훈련소 '인분 파문' …군인가족 ·네티즌 비난 빗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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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가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먹게 한 사건은 해이해진 군 기강과 허술한 보고체계의 실태를 드러냈다. 육군본부와 군 검찰이 군사법원에서 지난해 육군 장성 진급비리 의혹 문제를 다투고 있는 상황이어서 육군을 더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21일 "훈련병과 가족,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공식 사과했다. 윤 장관은 사고가 발생한 충남 논산의 육군훈련소뿐 아니라 전체 훈련소를 대상으로 특별 감사를 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 관련자는 물론 지휘 책임까지 일벌백계식으로 엄중히 묻겠다고 밝혔다. 육군은 사건을 일으킨 이모(28) 대위를 이날 '군형법상 가혹행위 혐의'로 구속했다. 남재준 육참총장은 모든 훈련병 부모에게 사과 편지를 발송키로 했다. 육군은 ▶다른 가혹행위 사례가 있었는지 조사▶초급 장교 등 간부들에 대한 인성 및 인권보호 교육 강화▶'병영생활 행동강령' 시행 등 대책을 내놨다.

한편 국가인권위는 이 사건을 직권조사하기로 결정하고 조사관 3명을 논산훈련소에 급파했다. 인권위는 훈련병에 대한 다른 인권침해 사례도 조사할 계획이다. 이날 국방부 홈페이지는 접속이 두 배(2만5000건) 이상 늘어 컴퓨터 속도가 크게 떨어졌다. 홈페이지 열린게시판에는 "사람이 할 짓입니까"(걱정), "국방부 너무한다. 이젠 인분까지"(예비군), "어찌 이런 끔찍한 일이"(군인 엄마), "노 대통령께 전하십시오"(어머니 부대장) 등 비난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글이 500건이 넘게 올라왔다.

◆ 장교 의식=이 대위는 전방사단에서 소대장을 마친 뒤 직업장교가 되기 위해 고등군사반을 졸업하고, 지난해 9월 훈련소에 배치됐다. 육군 관계자는 이 대위가 소대장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 대위로 진급하자마자 훈련소에 배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이 관계자가 덧붙였다. 이 대위는 병사들에게 가혹행위를 강요하고도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이 대위는 병사들에게 구타 및 가혹행위를 하지 말도록 교육해야 하는 위치다.

?보고 체계=지난 10일 이 사건이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나도록 훈련소장은 물론 담당 교육 대대장도 몰랐다고 한다. 가혹행위가 인터넷에 올려지고, 지난 20일 오후 취재진과 시민단체 등이 훈련소에 들이닥쳐서야 알게 됐다는 게 육군의 해명이다.

이 대위는 이 사건을 바로 상급 지휘관인 대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다른 육군 관계자가 말했다. 중대장과 대대장은 매일 오후 훈련결산회의를 한다. 그날의 교육내용, 각종 상황을 보고하는 자리다. 이 대위가 자신의 잘못을 은폐했더라도 그 중대에 근무하는 행정보급관(상사)과 4명의 소대장까지 가혹행위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다른 관계자가 지적했다. 더구나 훈련소에는 자살 방지 등을 위해 헌병과 기무요원까지 배치돼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병사 192명을 연병장에 세워놓고 벌어진 일이다. 군의 보고와 감시체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거나 보고도 아무런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했다는 의미다.

◆ 부실한 시설=육군훈련소의 화장실 및 세면시설은 매우 불결하다는 게 최근 육군훈련소를 나온 C 이병(22)의 경험담이다. 좌변식과 수세식 변기가 섞여 있는 화장실은 세면실과 같은 건물에 있다. 수세식은 수시로 단수가 돼 용변을 본 뒤 세면실에서 물을 떠와 씻어내야 한다. 2~3일에 한 번씩은 변기가 막혀 오물이 밖으로 흘러나온다고 한다. 청소는 훈련병이 맡고, 분대장이 감독한다. 문제의 육군훈련소는 사단 신병교육대를 포함해 전국의 33곳 가운데서도 가장 시설이 낫다. 이번 사건이 나자 육군은 화장실과 세면장을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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