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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제 新주류: 경제도 感性세대가 휘어잡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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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대선 투표일인 지난 19일. 한 방송사가 실시한 출구조사 결과 이회창 후보에게 1∼2%포인트 차로 뒤지던 노무현 후보가 오후 1시쯤부터 李후보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李후보가 앞선 것으로 알려지자 20∼30대들이 이날 낮부터 인터넷 게시판과 휴대전화로 투표를 독려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030은 한국 정치사의 흐름만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경제분야에서도 파워 리더로 자라났고, 거의 모든 마케팅의 중심에 서 있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올해 초 선정한 '아시아를 이끌 차세대 리더'에는 김택진(35) 엔씨소프트 대표 등 30대 한국인 5명이 포함돼 있다. 세계경제포럼 한국대표부 김경수 실장은 "20세기 한국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이 경륜을 갖춘 40∼60대였다면, 21세기를 이끌 지도자들은 패기와 진취성으로 무장된 2030"이라고 말했다.

◇아웃사이더에서 파워 리더로='20대 벤처CEO''30대 대기업 임원''2030 신소비족'-. 한국 경제에 2030 파워에 의한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다.

그들은 벤처기업은 물론 대기업·금융계에서도 벌써부터 주류(메인 스트림)로 부상하고 있다. 휴대전화·카드·쇼핑·레저 업계에선 이들의 매출 비중이 50%를 넘어서는 등 시장의 쏠림 현상도 드러나고 있다.

얼마 전 코스닥에 20대 CEO가 탄생했다. 인터넷 비즈니스 컨설팅업체 이모션㈜을 만든 정주형(29)씨가 주인공.

그는 대학 시절 웹 제작 프로그램을 개발하자마자 캠퍼스 생활을 접고 창업에 나선 신세대 사업가다.

국내 첫 인터넷 취업포털 '인크루트'를 만들어 신세대 벤처스타로 떠오른 이광석(28)사장, 인터넷 황제주로 불리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이재웅 사장(34), NHN의 김범수 대표(36) 등은 이미 스타(★) 벤처 CEO다.

코스닥증권시장·등록법인협의회에 따르면 1999년 5%에 불과했던 2030 임원진이 3년 만에 16%로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연세대 정승화 교수(경영학)는 "벤처와 신기술 산업을 중심으로 시작돼 경제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세대 교체의 바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젊은이들의 자신감이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었던 대기업이나 금융계도 30대 임원을 발탁하는 등 젊은 피 수혈에 나서고 있다.

LG텔레콤의 경영혁신 담당 전병욱(38)상무, 워커힐호텔 기획본부장 김준홍(36)상무, 효성의 남성윤(36)이사에 이어 국민은행은 금융시장의 꽃인 명동지점장에 윤설희(38·여)씨를, 기업은행은 정재섭(39)씨를 풍납동 지점장으로 각각 발령했다.

인사 시스템도 바뀌고 있다. SK텔레콤은 최근 사원에서 부장까지 종전 10∼15년 걸리던 것을 7년이면 가능하도록 능력 위주로 인사제도를 바꿨다. 이에 따라 98년엔 2명이었던 30대 임원이 올해는 5명으로 늘어났다.

◇시장의 새 주인=지난 22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세일 기간이 아닌 데다 불확실한 경기 탓으로 한산한 분위기다.

그러나 6층 스포츠 매장은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들로 북적거렸다. 나이키 매장의 서춘주(26)씨는 "유독 2030을 겨냥한 코너만 손님들이 많다"면서 "50만원대의 스키 용품 등이 불티나게 팔린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이 자사 카드 고객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령별 구매현황에 따르면 올해 대학생이 주력인 20대의 구매 건수는 32.4%, 직장인이 대부분인 30대는 32.2%로 1,2위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현대백화점·신세계 등이 중년층 디자이너 브랜드 대신 캐주얼 정장·운동화형 구두·색조화장품 등을 전면에 내세우는 등 2030 타깃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같은 2030 마케팅은 광고시장에서 우선 두드러졌다.

기업들과 광고회사들은 설문조사 등을 통해 2030이 선호하는 연예인을 TV광고 모델로 캐스팅하고, 장면도 무도회나 유람선 등을 배경으로 해서 성공을 꿈꾸는 젊은 층을 공략하고 있다.

대홍기획 김은하 연구원은 "대선 기간 중 노무현 후보의 TV선거 캠페인에서 선보인 기타를 치는 장면 등은 권위보다는 자유로움을 선호하는 2030을 겨냥한 광고"라며 "결국 이런 신선한 광고가 대선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2030은 현금보다 카드로 결제하고,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에 관심이 높다. 신용카드·이동통신 시장에선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등 중요한 고객이다.

현대카드 강청규 상품개발팀장은 "젊은 직장인들은 카드를 3개 정도 지니고 다닌다"고 말했다.

올해 LG카드는 '2030카드'로 20년간 업계 시장점유율(취급액 기준) 1위를 달리던 BC카드를 제치고 선두에 나섰다.

소위 명품업체들도 신 소비계층인 이들 2030을 잡으려 안간힘이다. 구찌·크리스티앙 디오르·버버리는 종전의 보수적인 디자인에서 최근 원색적이고 튀는 디자인으로 제품을 교체하고 있다.

구찌 매장 관계자는 "2∼3년 전만 해도 40%에 불과했던 2030세대가 올해는 80%에 육박하며 주 소비층으로 등장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신상품을 남들보다 먼저 사서 써보고 주변에 제품 평가까지 해주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족'까지 나타나고 있다.

회사원 최성민(31)씨는 "1년에 7∼8개의 첨단 디지털 신제품을 사는데, 연간 8백만원 정도 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니·파나소닉 등 전자회사들은 아예 이들 신상품 매니어 인터넷 동호회를 신제품 모니터링 요원으로 위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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