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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카드 깨우기도 지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7면

신용카드회사들이 골치를 앓는 일 중의 하나가 '휴면(休眠)회원'의 처리 문제입니다. 회원으로 가입한 후 1년이 넘도록 신용카드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지난 9월 말 현재 2천1백여만명이나 됩니다.

올해 초 금융감독원이 길거리와 지하철역 등 노상에서 카드를 발급하는 행위를 금지시키자 카드사들은 휴면카드 회원에게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회원모집 수단이 제한되자 사용실적은 없어도 이미 회원으로 가입한 휴면회원을 잘만 설득하면 카드를 사용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카드사들이 휴면회원을 깨울 때는 요란한 자명종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콜센터에 배치된 여직원이 상냥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말합니다.

"회원님! 저희가 그동안 뭐 불편하게 해드린 게 있나요. 서비스에 불만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저희 서비스가 요즘 몰라보게 좋아졌답니다. 꼭 한번 이용해 보세요. 제발."

휴면카드 잠깨우기가 한창인 가운데 금융감독원은 최근 내년 1월부터 회원의 동의를 받으면 카드사가 휴면회원의 자격을 없앨 수 있도록 약관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회원 확보 창구가 줄어들어 불평해야 할 카드사들은 의외로 이번 방침을 내심 반기고 있습니다.

카드사들이 휴면회원 깨우기에 이골이 났기 때문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우선 휴면카드 부활로 별로 재미를 못 봤다는 게 카드사들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1년이 넘도록 카드를 사용하지 않은 회원은 한두번 잠을 깨는 척하다 곧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든다는 게 카드사들의 경험입니다.

심지어 카드사의 연락을 받고 뒤늦게 신용카드를 무리하게 사용해 손실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카드사가 이번 조치를 은근히 반기는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조만간 금감원은 휴면카드 회원이 사용하지 않은 현금서비스 한도에 대해서도 1%의 충당금(신용카드를 사용한 후 떼일 경우에 대비해 쌓아두는 돈)을 의무적으로 쌓도록 할 예정입니다. 카드사는 그만큼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지요.

따라서 휴면카드를 아예 없앨 수 있게 되면 그만큼 이익 감소를 피할 수 있고 덤으로 휴면 회원의 잠을 깨우는데 드는 비용도 절감된다는 계산입니다.

그렇다고 손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2천1백만장의 휴면카드가 폐기되면 약 6백30억원(카드 한장의 발급비용은 2천∼3천원)을 고스란히 날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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