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도시평가]:대통령상제주시:주민 자발적 참여·친환경 정책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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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라산을 뒷목에 두고, 바다를 눈앞에 펼친 국토 남단 제주도의 관문 제주시-. 한라산의 손자격인 기생화산 '오름'이 곳곳에 버티고 있고, 그 산들의 푸르름이 운치를 더한다.

지방 차원에선 드물게 조선조 문화와 역사를 건물들로 복원·재현하고 있고, 시민·관광객이 어우러지는 제주향토 예술의 이벤트가 쉼없이 한해를 달려간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국제도시-.

지난 7월 초 제주시는 36년 만에 삶의 젖줄을 되찾았다.

1960년대 복개공사로 자취를 감췄던 산지천이 오랜 기간의 복원공사를 끝내고 은어·숭어·장어가 뛰어 노는 과거의 자연상태로 되돌아간 것이다. '제주의 청계천'으로 불리는 산지천은 66∼82년 복개공사로 14채의 주상복합건물, 1백72개의 상가·주택 등의 밀집지역으로 바뀌며, 한때 '제주 근대화의 상징'이 됐다. 그러다 90년대 중반 재해위험지구 판단이 내려졌고, 생활하수가 쏟아지며 악취를 풍기는 도심속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3백47억원을 들여 6년여 복원·정비사업이 이뤄진 산지천(길이 4백74m, 폭 21∼36m)은 이제 4개의 교량이 가설되고 1백21개의 물기둥을 뿜어올리는 음악분수가 자리한 시민 휴식공간으로 바뀌었다.

하천 상류에서 솟는 용천수와 바닷물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며 연중 맑은 물이 흐르고 7만여 그루의 나무와 제주 자연석으로 꾸며진 하천제방에는 계단식 분수가 쉴새없이 흐른다.

이명박(李明博)서울시장이 당선 뒤 현장을 방문한 이유가 짐작된다. 자연을 되살리고 시멘트 일색의 도시풍경을 푸르른 녹색으로 바꾸려는 제주시의 계획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지난 5일 오후 7시30분 제주시 제주도문예회관 대극장.

제주시가 직접 기획, 제주시립합창단·교향악단이 만들어낸 자치단체 첫 창작오페라 '백록담'이 초연됐다. 8일까지 네차례 공연되는 동안 적은 인구의 제주에서는 보기 드물게 연인원 4천여명이 이 오페라 무대를 찾았다. 제주섬 탄생 신화인 '설문대할망'이야기를 오페라 무대로 끌어낸 이 작품은 "지방에서도 세계를 지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사건'이었다.

조선 말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옛 병영훈련소인 관덕정(觀德亭)만 남기고 사라진 조선조 문화·예술·행정의 중심지인 '제주목관아지'(濟州牧官衙址·국가사적 380호)는 이달 말 수백년 만에 과거의 얼굴로 다시 시민 곁으로 돌아온다.

91년부터 벌여온 복원사업에는 1백75억원이 들어갔지만 관(官)만의 '나홀로'사업이 아니다. 29만 시민 중 1만3천6백여명, 2만7천7백여개의 기관·단체가 헌와(獻瓦)운동에 나서 4만5천5백15장의 기왓장을 기증했다. 2억여원의 성금까지 걷힌 문화운동의 결실이다.

김태환(金泰煥)제주시장은 "자연과 문화가 살아 숨쉬고, 시민들이 그런 삶을 함께 호흡하며, 후세에까지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도시로 만들어가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제주=양성철 기자

ygodo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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