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법' 싸고 反中·親中 소용돌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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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정치 바람이 잠잠했던 홍콩에서 친중(親中)·반중(反中)의 격랑이 맞부딪치고 있다. 발단은 홍콩 정부가 내년 초에 만들려는 '홍콩판(版) 보안법'이다. '특별행정구 기본법 23조'에 따라 반역·분열·선동·체제전복 등 일곱 가지 행위를 더욱 엄하게 단속하고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홍콩 섬의 빅토리아 공원엔 지난 15일 6만여명의 시위대가 모였다. 1989년 6월 천안문사태 유혈 진압 이후 13년 만에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악법이 홍콩에 화(禍)를 부르면 천지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슬로건이 물결쳤다.

시위대는 법 제정에 앞장선 레지나 입(葉劉淑儀)보안국장을 '저승 사자'에 빗대 '악법 사자'라고 야유했다. 그녀는 엄격한 법 집행으로 '철(鐵)의 여인'이란 평판을 듣는 장관급 인사다. 그녀는 "홍콩인들의 자유와 인권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종교인들도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천주교 신도들의 정신적 지주인 천르쥔(陳日君)주교는 대형 십자가 앞에서 "정부 지도자들이 한쪽 말만 듣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홍콩 지도층의 배후에 있는 '중국'을 겨냥한 말이다.

홍콩인들의 반발 속엔 '23조 입법'이 이뤄지면 사람·돈·정보의 흐름에서 앞섰던 '자유 도시'란 이미지가 깨지고, 대륙의 정치적 입김이 더욱 거세질 것이란 불안감이 깔려 있다. 예컨대 파룬궁(法輪功)수련생들이나 반체제 인사들은 앞으로 홍콩에서도 발을 붙이기 어렵게 된다.

'경제 선진국'을 자부하는 홍콩의 대응을 보고 있노라면 '정치 후진국'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홍콩 정부는 우선 집회장소인 빅토리아 공원을 교묘하게 원천 봉쇄했다. 여섯개의 간이 축구경기장을 이런저런 명목으로 다른 단체에 빌려줘 집회를 막으려 했다. 보안국에선 한술 더 떠 "이번 시위 참가자는 1만2천명에 불과하다"며 "홍콩이 얼마나 자유를 누리는지 보여줬다"고 견강부회했다. 다음주엔 1천여개 친중 단체들이 '맞불 지지 시위'를 벌인다고 한다.

홍콩인들 사이엔 요즘 베이징(北京)에 대해 '노(NO)'라고 말하지 못하는 둥젠화(董建華)행정수반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

董수반으로선 '23조 입법'을 밀어붙이자니 민심이 도망가고, 물러서자니 정치 리더십이 무너지는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yas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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