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원, 법규 어긴 투자로 5300억 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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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6년간 국민은행을 이끌었던 강정원 전 행장이 19일 금융감독원의 중징계를 받았다. 금감원은 강 전 행장이 해외 투자와 채권 발행을 하는 과정에서 법규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지난달 어윤대 KB금융 회장이 취임하면서 행장직에서 물러났다. [중앙포토]

금융감독원이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에게 부실 경영과 법규 위반의 책임을 물어 문책경고에 해당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로써 강 전 행장은 앞으로 3년간 금융회사에 취업할 수 없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에 이어 KB 계열 최고경영자(CEO) 3명이 줄줄이 징계를 받은 것이다.

금감원은 19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국민은행 전·현직 임직원 88명을 징계하고, 국민은행에는 기관경고를 했다. 단일 금융회사가 받은 징계로는 가장 큰 규모다. 이들이 은행에 끼친 손실은 모두 1조 1000억원에 이른다. 이 중 강 전 행장과 전·현직 부행장 등 9명이 문책경고 등 중징계를, 나머지 79명은 견책이나 주의 등 경징계를 받았다. 중징계 대상엔 지난 1월 금감원의 사전검사 내용을 적은 수검일지를 외부에 유출한 부장급 간부 1명과 국민은행 노조 간부 2명이 포함됐다.

또 전산시스템 교체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외이사 1명은 경징계를 받았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국민은행에 대해 사전검사를 한 데 이어 올 1~2월엔 정기검사를 했다. 사전검사를 한 지 8개월 만에 제재가 이뤄진 것이다.

◆강 전 행장, 5300억원 손실 끼쳐=금감원이 강 전 행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 사안은 크게 다섯 가지다. 핵심적인 사안은 국민은행이 2008년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지분 41.9%를 9392억원에 사들이는 과정에서 강 전 행장이 낙관적인 전망만을 이사회에 보고해 4000억원의 손실을 낸 것이다. 특히 이사회에서 지분 취득 결의를 하기 전에 BCC 측에 채무상환 요구가 있었고, BCC 측이 허위 자료를 낸 것을 알았음에도 매입가를 낮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도리어 이사회엔 “건전성과 유동성이 좋은 은행”이라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또 2008년 10월께 BCC가 현지 감독당국으로부터 대출 부실로 충당금 적립과 증자 요구를 받았음에도 이를 이사회에 보고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커버드 본드(담보가 있는 채권)를 발행해 10억 달러를 조달하는 과정에서도 불필요한 손실을 끼쳤다. 외화를 중개할 외국계 은행을 구하지 못해 5억5000만 달러만 들여왔고, 나머지 4억5000만 달러를 무리하게 조달하기 위해 1300억원의 추가 비용을 지출했다. 이것도 사후에 경영협의회를 거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또 2007년 주전산기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특정 기종과 인연이 있는 한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는데도 강 전 행장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지적됐다. 지난해 3월엔 국민은행 여신심사역과 지점장이 공모해 260억원의 금융사고가 났는데도 감찰과 검사를 소홀히 하고 1억원 규모의 사고로 축소 보고한 사실도 적발됐다. 금감원은 또 강 전 행장이 관용 차량을 사적으로 활용한 사실도 확인해, 은행에 경영 유의 사항으로 통보했다.

◆강 전 행장, 금융권 복귀 어려워=징계 수위는 지난해 9월 파생상품 투자손실로 직무정지 상당의 징계를 받은 황영기 전 회장보다는 한 단계 낮다. 금감원 김진수 제재심의실장은 “자기자본의 10%가 넘는 손실을 은행에 끼치면 직무정지를, 3% 이상이면 문책경고를 한다”며 “강 전 행장이 은행에 끼친 손실액은 자기자본의 3%를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강 전 행장이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낼 수 있다. 강도 높은 징계가 이뤄졌지만 강 전 행장을 비롯해 BCC 투자 등에 관여한 부행장급 간부들이 이미 퇴임해 은행 경영진엔 큰 타격이 없다. 그러나 은행의 신인도엔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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