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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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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인간의 배설물, 즉 인분이 무용(無用), 무익(無益)했던 것만은 아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농경사회에서 인분은 소중한 거름이요, 훌륭한 대체 비료였다. 서양의 기록에선 인분이 수천 년 동안 비둘기 배설물 다음의 최고 거름으로 꼽혔다. 1960년대까지도 인분을 거름으로 사용한 우리 사회에서도 인분 확보가 1년 농사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니 돈을 받고 파는 귀물(貴物) 대접을 받은 건 당연하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이유를 시기와 질투가 아니라 인분과 관련 짓는 우스개 해석도 있다. 사촌이 논을 샀으니 인분이 더 필요할 것이고, 뒷간에 더 자주 가서 거름을 만들어 줘야겠다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그랬다는 거다.

인분을 치료용으로 먹은 기록도 보인다. 『동의보감』은 저절로 죽은 새나 짐승의 고기를 먹고 중독됐을 때 인분즙(人糞汁)을 먹이면 좋다고 적고 있다. 독버섯에 중독됐을 때 인분을 한 되 먹인다는 기록도 있다. 매를 심하게 맞아 골병 든 사람에게 인분을 먹게 한 비방도 있었다. 옛날 소리꾼들이 목을 틔우기 위해 인분을 거른 똥물을 먹었다는 건 잘 알려진 얘기다. 가깝게는 박동진·임방울 같은 국악인들도 그랬다고 한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인분은 가장 더러운 것의 대명사요, 불명예의 상징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인분을 끼얹는 행위는 울분 토로(吐露)와 질타(叱咤)의 방편이기도 했다. 만해 한용운이 감방에서 겁에 질려 있는 나약한 민족 대표에게 인분 세례를 퍼부은 것도 그래서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굴욕의 극치다. 1978년 노조 해체를 위해 동원된 폭력배들이 동일방직 여공들에게 인분을 들이붓고 먹이기까지 한 사건은 반인간적이고 야만적인 행위 그 자체였다.

이러니 인분이 무기(武器)로도 쓰인 건 놀랄 만한 일이 못 된다. 조선 민병(民兵)의 무기였던 분포(糞砲)와 금즙(金汁)이 그 예다. 분포는 항아리에 모아 둔 분뇨를 대나무통에 넣어 성 아래 적에게 분사했다. 금즙은 인분을 걸러서 1년 정도 삭힌 것으로 독성이 매우 강하고 냄새가 지독했다고 한다.

째려본다는 이유로 지적 장애가 있는 여고생을 화장실로 끌고가 폭행하고 인분을 먹인 10대 소녀 두 명이 엊그제 구속됐다. 엽기적이고 무서운 행동에 마음이 영 거북하다. 혹시 그 아이들은 자신을 이렇게 되도록 방치한 사회와 어른들을 향해서도 인분을 뿌리고 싶은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