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탄소 통조림’… 지구촌 탄소배출량 33% 산림이 흡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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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23일부터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전 세계 나무 박사들이 총집결한다. 제23회 세계산림과학대회(IUFRO)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 대회는 118년의 역사를 가진 산림 분야 최고 권위의 모임이다.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짧은 기간 동안 성공적인 산림을 조성한 한국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반영하듯 이번 대회에는 세계 110개국의 나무 박사 3500여 명이 참가 신청을 했다. 발표되는 논문도 2150편에 이른다. 118년 대회 역사상 최대 규모다.

◆최대 화두는 기후변화=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지구촌 기후변화→산림 파괴→사라진 산림 때문에 기후변화 촉진. 이런 악순환이 이번에 모이는 산림 전문가들의 최대 관심사다.

35년 만에 108억 그루의 나무를 심은 한국의 산림조성 성공사례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23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산림과학대회(IUFRO)에 참석하는 3500여 명의 산림·환경 전문가들은 대관령 특수조림지 등 8곳의 조림지를 방문해 성과를 직접 확인할 예정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캐나다 천연자원부 마이크 플래니건 책임연구원은 최근 각국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산불도 기후변화의 산물이라는 취지의 논문을 발표한다. 러시아의 경우 올해 1000년 만에 최악의 수준인 40도까지 기온이 오른 게 산불의 주원인이라는 것이다.

또 유엔 산하기구인 국제산불관리센터 요한 골드아머 의장은 “산불은 더 이상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문제”라고 지적할 예정이다. 초대형 산불이 국경을 뛰어넘어 발생하고 있는 만큼 대처도 국제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형 산불에 대처하는 국가 간 역할과 절차에 대한 표준 매뉴얼이 없어 국제공조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게 문제다. 이번 대회에선 이에 대한 국제적 협의가 논의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생태계 교란이 집중적으로 보고된다. 대표적인 게 꽃과 잎이 피어나는 시기가 뒤죽박죽이 돼 버린 현상이다. 지난해 서울에서는 아까시나무가 5월 10일 꽃을 피웠다. 위도가 3도나 낮은 전남 해남의 땅끝마을보다 사흘이나 빨랐다. 반면 올해는 늦추위 때문에 순차적으로 피어야 할 산수유·개나리·진달래·벚꽃이 한꺼번에 피어나는 진풍경을 연출해 국제적 관심을 받았다.

꽃피는 시기가 바뀌면 꽃에서 먹이를 얻는 곤충이 곤란을 겪는다. 또 잎이 엉뚱한 시기에 나오면 애벌레가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다. 곤충과 애벌레를 먹이로 삼는 다른 동물 등 생태계 전체로 영향이 확대되기 때문에 관심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내 대표 수종인 소나무가 갑자기 고사하는 것도 기후변화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겨울철 이상고온과 가뭄으로 소나무에 수분이 부족해지자 생리적 장애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난해만 소나무가 말라 죽은 면적이 8416㏊에 이를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이 추세대로라면 2060년엔 강원도와 경북 북부 지역에만 소나무가 남고, 2090년엔 태백산맥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남한에서 소나무를 볼 수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강원도 홍천의 매화산 낙엽송림.

◆‘탄소 통조림’ 나무가 해법=전 세계적인 기후변화의 해법으로는 역시 나무만 한 게 없다는 것이 대회 참석자들의 견해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80억t에 이른다. 유엔 산하 정부간기후변화패널(IPCC) 소속 버너 커즈 박사가 개발한 산림탄소통합모델(CBM-CFS)을 통해 분석한 결과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3%인 26억t가량이 산림에 흡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철근이나 콘크리트를 나무로 대체하는 것도 효과적인 이산화탄소 감축방법이다. 철근과 콘크리트는 제조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사용해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만 나무는 오히려 이산화탄소를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 설치된 ‘탄소 통조림’에 이산화탄소를 축적하는 시스템이 조성되는 셈이다. 연료도 마찬가지다. 나무를 태울 때도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만 이는 외부에서 빨아들여 보관 중이던 이산화탄소를 내놓는 것일 뿐 새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게 아니다. 화석연료와는 달리 이산화탄소 총량을 증가시키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이번 대회에서는 나무 활용법에 대한 논문이 상당수 발표된다. 특히 나무 부산물로 바이오연료를 만드는 기술이 세계적 관심사다.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프랑수아 아길 교수, 핀란드 산림과학원 페카 사란파 박사, 한국 산림과학원 이오규 박사 등이 이와 관련한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 조림지 8곳 방문=28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대회는 기조연설과 논문 발표가 주요한 프로그램이다. 첫 기조연설은 한국의 고은 시인이 맡는다. ‘숲은 짧고 사막은 영원하다’는 주제로 산림과 환경에 대한 사랑을 호소할 예정이다.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엘리너 오스트롬 미국 인디애나대 교수는 27일 경제적 관점에서 본 산림의 가치에 대해 연설한다. 열대림 보전 연구 분야에서 손꼽히는 석학인 피터 쇼 애슈턴 하버드대 명예교수도 28일 열대림의 재난 기록에 대한 연구를 발표한다.

학자들이 모인다고 학술행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기념식수. 행사 하루 전 개최국에서 의미 있는 나무를 심는 행사는 100년 넘게 이어온 대회의 전통이다. 한국 대회에서는 천연기념물인 정이품송을 유전자 복제한 ‘장자목’과 금강송을 심을 예정이다. 산림과학원 최완용 원장은 “정이품송에 얽힌 스토리와 함께 이를 복제해 낸 한국의 기술이 세계적 관심을 끌 것”이라고 소개했다.

26일엔 참가자들이 8개 팀으로 나뉘어 산림 학술여행을 떠난다. 장소는 대관령 특수조림지와 국립수목원 등 한국 조림의 성공사례를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는 곳이다. 여기에 산림청과 산림과학원의 박사급 전문가 40명이 투입돼 한국의 산림 조성 역사, 보존 및 이용전량, 숲과 관련된 전통문화 등을 소개할 예정이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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