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은 밀수범' 무차별 단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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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6일 멕시코를 방문한 윤창호(40·대학강사)씨는 멕시코시티 공항에 내려서자마자 한국인 여행객들에게서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이들은 "멕시코 경찰이 한인 상인과 관광객을 마구 잡아들이고 있으니 한인 상점이 모여 있는 곳은 피하는 게 좋다"고 충고했다. 尹씨를 아래위로 훑어보던 공항 경찰은 "당신도 한국 마피아냐"라며 비웃음을 던졌다.

밀수와 상표위조 단속을 이유로 지난 5일 밤 시작된 멕시코 검찰의 대대적 한국인 '표적수사'가 교민사회를 혼란과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

◇사건 경과=멕시코 연방검찰 조직범죄 특별수사부의 지시에 따라 수백명의 경찰이 지난 5일부터 수차례에 걸쳐 멕시코시티의 번화가에 집결돼 있는 한인 상점들을 급습, 한인 50여명을 무차별 연행했다. 연행자에는 투자환경 조사차 방문한 미국 시민권자와 관광객 등 무고한 사람들도 포함됐다. 한국대사관의 항의로 관광객은 풀려났지만 32명은 밀수와 상표 위·변조 혐의로 구속됐다. 멕시코 연방법원은 14일 이 중 19명을 무혐의 처리했지만, 8명에게는 보석이 가능한 준기소 처분을 내리고 나머지 5명은 정식 기소했다. 그러나 무혐의 판정을 받은 19명은 체류목적 위반 여부를 가리기 위해 이민청으로 넘겨져 무거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예고된 사건"=멕시코 당국이 특정 교민사회만을 표적수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는 게 교민들의 반응이다.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의 강병철 영사는 "불법행위 단속에 대한 경고가 계속됐지만 이렇게까지 클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한인사회 확대를 경계하는 멕시코인들이 검찰에 지속적으로 단속 압력을 넣은 것도 원인이지만 근본적 잘못은 한탕주의에 물든 일부 교민의 불법행위에 있다는 것이 한인들의 지적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외국 유명상표를 도용한 가짜 의류를 수입, 저가 공세를 펼치면서 한인들은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현지인들의 원성을 샀다. 한인들은 세관원들을 매수, 한국·동남아산 의류를 대량 밀수했고, 일부 문제 교민들은 같은 한인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2, 3년 사이 경제가 악화되자 아르헨티나 등 주변국 교민들이 그나마 상황이 나은 멕시코로 대거 이주, 교민수가 2만명에 육박하게 되면서 자연 교민들의 불법행위도 양적으로 팽창했다.

◇'알몸수색'문제=자성하는 한인들도 멕시코 경찰의 인권유린에는 분노하고 있다. 무차별 연행된 8명 교민 여성 중 5명이 "멕시코 남성 수사관들 앞에서 알몸수색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사관은 "죄의 유무를 떠나 알몸수색은 명백한 인권유린"이라고 항의했으나 멕시코 경찰은 "멕시코인들도 검거되면 으레 알몸수색을 받는다"며 "인권침해 행위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한국 정부 대응=강웅식(姜雄植) 주멕시코 대사는 "알몸수색에 대해 호르헤 카스타녜다 멕시코 외무장관 등 외무부와 연방검찰 주요 인사에게 강력히 항의했으며, 멕시코 일간지와의 회견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도 "무차별 구속과 미성년 자녀를 둔 부부를 함께 구속한 것 등에 대해 항의, 어린 자녀를 둔 5쌍 부부 중 3명과 단순 관광객은 석방됐다"며 "멕시코 검찰에도 알몸수색에 대한 진상조사와 공식해명을 정식 요구했다"고 말했다.

신은진 기자,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성기준 특파원

nad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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