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鄭공조 국정 공동책임… 文書 안남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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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3일 국회에서 만난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는 자신들의 '국정공동책임 합의'가 공동정부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꺼리는 모습이었다. 둘 다 5년 전에 있었던 'DJP 공동정부 합의문'의 부정적 이미지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盧·鄭 합의와 DJP 합의는 무엇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를까.

DJP 합의문은 1997년 11월 3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양측 당원 1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국민회의 김대중(DJ)후보와 자민련 김종필(JP)후보가 공식 서명했다. 명칭은 '정당 간 협약문서'다. 후보 단일화·공동정부 구성·내각제 개헌 추진이 핵심이다. 1년여에 걸친 줄다리기 끝에 대선을 한달 반 앞두고 일괄 타결했다.

그 후 공동선거운동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후보 단일화는 DJ쪽으로, 내각제 개헌은 JP의 요구대로, 공동정부의 장관 자리는 5대5 비율로 나누기로 했다.

한나라당이 '권력 나눠먹기 야합'이라고 비난한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DJP 합의에 비하면 盧·鄭 합의는 신속히 이뤄졌다. 지난달 15일 두 사람이 후보를 단일화하기로 전격 합의한 뒤 한달도 채 안돼 나왔다. 협상 과정도 처음엔 단일후보만 정하기로 했으나, 상황 변화에 따라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추가 합의했다. 선거일을 엿새 남겨두고 공동정부 운영합의가 추가됐다. 단계적 타결방식이다.

5년 전 DJ는 JP의 도움을 받아야만 집권이 가능하다는 판단과 치밀한 접근이 있었다.

이에 비해 盧·鄭합의의 밀도는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盧후보가 자력승리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鄭대표도 큰 집착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용면에선 유사한 점이 많다. 발표는 없었지만 통합21측은 총리지명권을 鄭대표가 행사할 것이라는데 의문을 갖지 않는다. 내각의 일부 장관도 당연히 차지할 것으로 믿고 있다. DJP 주례회동 같은 盧·鄭 정례회동과 DJP의 '공동정부 운영협의회'같은 盧·鄭정권의 '정부+양당 당정협의'합의는 이런 권력분점 약속의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문제는 합의의 효력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다. DJP 공동정부는 개헌 완료시점으로 합의된 1999년 가을 DJ가 내각제 약속을 파기하자 결정적 위기를 맞게 된다. 이 약속파기는 공동정권 붕괴로 이어진다.

정몽준 대표는 한때 국회의원 수가 50여명에 달했던 자민련 같은 강력한 정당을 갖고 있지 못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그는 반격할 무기가 없다. 이 점이 선거·국정공조에 鄭대표가 막판까지 결심을 못했던 핵심 이유였다고 한다.

전영기 기자

chuny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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