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줄이자" 매물 쏟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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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지난 9월 초 서울 송파구 가락동 S아파트 17평형을 매입했던 金모(49)씨는 최근 3천만원을 손해보고 아파트를 팔았다. 아파트 값이 크게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융자금 1억8천만원의 이자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金씨는 "단기 차익을 노리고 아파트를 매수했으나 상투를 잡은 꼴이 됐다. 이자비용을 감안하면 지금 파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아파트 값이 약보합세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값이 크게 오른 시점에 융자금을 많이 끼고 기존 아파트·분양권을 매입한 투자자들이 구입 가격보다 싸게 물건을 내놓고 있다. 내년 부동산시장이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오자 더 손해보기 전에 팔고 빠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매물은 단기 투자세력이 몰린 서울·수도권 재건축 대상 아파트나 분양권에서 많이 나온다고 중개업자들은 전한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대성공인중개사무소 남효승 사장은 "급매물로 나온 60∼70%는 지난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아파트를 매입했던 투자자들의 것"이라며 "은행돈을 너무 많이 빌려 투자한 탓인지 값이 조금만 빠져도 초조해 한다"고 말했다. 인근의 한 중개업자는 "아파트값이 내려가 실거래가로 신고해도 양도소득세 부담이 없어 거리낌 없이 처분하려 한다"고 전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에덴공인중개사무소 김치순 사장은 "지난 여름 잠실 주공 3단지 15평형의 경우 4억5백만원까지 거래됐으나 지금은 3억6천5백만∼3억7천만원으로 떨어졌다. 아파트값이 조정을 받자 대출을 많이 끼고 산 사람들이 매물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떴다방(이동식중개업자)들이 미등기 전매차익을 노리고 매수했다가 값이 내리자 손해보고 내놓는 매물도 적지 않다.

강서구 화곡동 J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일부 재건축아파트 시세가 계약 당시보다 내려가자 잔금 지급일 이전에 되팔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매도자와의 분쟁 가능성 때문에 사려는 사람이 뜸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1∼2년 전 아파트를 싸게 매입했던 투자자들은 느긋해 시세 이하로 내놓는 매물이 많지 않은 편이다.

분양권 시장에서도 막차를 탄 투자자들의 급매물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인천시 서구 성실공인중개사무소 김영진 사장은 "당하·검단지구 아파트분양권 값이 평형에 따라 지난 여름에 비해 5백만∼1천만원씩 빠졌다"며 "분양권을 3∼4개씩 산 투자자들은 시장 전망이 밝지 않자 일부를 급히 팔려고 한다"고 말했다. 남양주 평내지구 B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지난 9월 투기과열지구 지정 이전에 프리미엄을 주고 샀던 투자자 중 일부가 매입가 이하로 내놓고 있으나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내년엔 아파트값이 약보합세를 기록하는 가운데 시중금리가 지금보다 1%포인트 정도 높아져 금융부담이 더 늘어날 것"이라며 "이 경우 급매물이 더 많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박원갑 기자

w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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