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은 잠든 영혼 깨우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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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제주도 서귀포시 한라산 기슭에 자리잡은 남국선원(선원장 혜국 스님)에 닿으려면 자동차 길을 버리고 1㎞ 가량 공동묘지를 끼고 더 올라가야 한다. 화두를 잡고 생사해탈의 경지에 닿으려고 정진하는 수도승에게는 인생무상을 떨치지 못하게 하는 환경이다.

지난 10일 오후, 기자는 혜국(사진)스님의 동안거 수행을 두 시간 가량 방해했다. 혜국 스님은 스님들의 안거 수행을 돕는 남국선원 외에 신자에게 시민선방을 제공하고 1994년에는 한번 들어가면 1년 동안 외부와 접촉을 끊고 수행에 전념하는 공간인 무문관(無門關)을 여는 등 참선 수행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고 있다. 남국선원엔 지금 무문관과 시민선방의 수행자까지 합쳐 65명 가량이 용맹 정진 중이다.

무문관의 안 풍경이 궁금했으나 그곳은 출입이 불가능하다. 무문관에서 가장 먼저 1년간 수행한 혜국 스님의 경험만으로도 수행의 치열함이 느껴졌다.

"4∼5개월 지나면 날짜를 계산하지 못하게 됩니다. 계절도 새소리와 꽃향기로 짐작할 뿐이지요. 그러다보면 세속의 것들이 하나 둘 끊어져 나갑니다. 공양은 낮 한끼뿐입니다. 한평생 먹고 사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긴다는 생각도 들고, 음식에 대한 관심이 끊깁니다. 그렇게 1년을 지내면 몸무게가 많게는 15㎏, 적게는 2㎏ 정도 빠집니다. 책도 없으니 오로지 화두 참선 뿐이지요. "

남국선원의 정원은 7명인데 현재 수행을 신청해놓은 스님이 37명이나 된다. 1년씩 해도 2007년까지 예약이 끝난 셈이다. 그러나 정월 대보름 한번 문을 열 때마다 "이런 느낌 처음"이라며 문을 도로 닫는 스님이 많아 그 기간은 더 늘어진다.

연비(燃臂·불법에 대한 믿음과 서원의 상징으로 팔뚝의 일부나 손가락을 불에 태우는 의식)에 얽힌 사연을 물었다. 혜국 스님의 오른손 손가락 3개는 마디 두 개가 없다. 이에 혜국스님은 "해인사에 있을 때 성철스님께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 웃으시면서 백련암에서 더 공부하라고 하셨는데 제가 그만 우쭐하여 그 말씀을 듣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스님의 말. "조금 지나 생각하니 깨달은 것이 아니었어요. 그 길로 내 욕망 다 태우고 말과 행동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하여 수행자로 거듭나려고 발버둥쳤습니다. 지금 나의 모습이 그 때 그 맘 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또 아들을 환속시키려 절을 찾아오시는 아버님께서 포기하시게 하려는 뜻도 있었어요."

연비로 육신을 부처님께 공양으로 바친 뒤 혜국 스님의 수행은 참으로 치열했다. 서울 천축사 무문관에 들어가려다 고참 스님들에게 밀리고 찾은 방법이 '천연' 무문관이었다. 그게 태백산 도솔암이었다. 혜국 스님은 69년부터 71년까지 혼자서 솔잎과 쌀로 생식하고 잠도 앉거나 서서 자는 장좌불와(長坐不臥)수행을 하던 그 시절을 수행생활의 절정이라고 회고했다.

"깨달음에 이르면 마음의 눈이 열리고 돌 속에 움직이는 기운, 나무 속에 움직이는 기운이 똑 같아지면서 환희심이 일고 미칠 지경이 됩니다."

참 어렵다 싶었다. 하지만 혜국 스님은 "일체의 인간적 분별을 넘어서는 우주의 대진리, 혹은 인간의 마음 고향이 선이라 하면 크게 틀리지 않다"고 선의 의미를 쉽게 풀었다. "누구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어요. 참나는 누구인가, 인생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를 고민하고 우주와 나는 둘이 아니고 하나이며 이 육신이 참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면 누구나 깨달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끝으로 그는 일상 속에서 참선하는 방법을 일러줬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 육체만 아니라 영혼도 깨워야 합니다. 육신의 주인공인 영혼이 깨어 있도록 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그것이 참선입니다. 남이 나의 뜻대로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나부터 내 뜻대로 해 보는 겁니다."

서귀포=정명진 기자

m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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