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鄭 정책공조 이면은 없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 사이의 대선공조 문제가 매듭지어졌다. 어제 양당 정책을 조율한 합의문 서명식이 있었고, 두 사람의 공동 유세가 펼쳐질 것이라고 한다. 민주당은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가 새롭게 발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같은 공조가 대선 판세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유권자의 평가 잣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정책공조는 전반적으로 鄭대표의 체면과 의견을 우선했고, 민주당이 양보한 모양새다. "북한 핵 개발 의혹이 해소되지 않으면 정부 차원의 현금 지원 사업의 중단 고려"라는 대북정책은 盧후보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공조였을 것이다.

"2004년 17대 국회에서 대통령의 개헌 발의, 2008년 분권형 대통령제 헌법에 입각한 선거 실시"는 정몽준 프로그램의 핵심사안이다. 그렇지만 개헌 자체가 복잡미묘한 사안임을 감안할 때 무수한 논란을 야기할 요소가 담겨 있다. 이 같은 내용이 盧후보의 대북정책이나 권력 운영 구상에 안정감을 줄지, 아니면 鄭대표를 붙잡아두기 위해 원칙을 덮어둔 고육지책적 양보인지를 유권자들은 따져볼 것이다.

무엇보다 유권자들은 5년 전 DJP(김대중+김종필) 단일화 공조와 비교할 것이다. 당시에도 진보개혁 성향의 DJ 측은 "승리가 중요하다. 대통령 자리를 빼놓고 모든 것을 들어줘라"는 입장에서 보수우파적인 JP쪽의 공동정부 구성·내각제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일단 집권한 뒤 JP쪽 입장은 소수로 밀린 채 정책보다 자리 나눠먹기에 치중했다.

그런 불쾌한 기억 때문에 盧·鄭공조에 대한 유권자의 시각은 미덥지 못하다. 17일 간의 진통과 우여곡절 속에 짜인 이번 공조가 얼마만큼 실천 가능할지, 권력 나눔의 이면계약·흥정은 없는지, DJP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까 하는 측면을 세심히 짚어볼 것이다. 남은 선거운동 중 두 사람의 행태와 발언을 지켜보면서 유권자들은 최종 판단을 내릴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