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걸 "수입 50~80% 빼앗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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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나는 매일 술에 취했고, 마리화나를 피웠다. 내 자신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일을 모두 잊고 싶다. "

필리핀 여성 로즈(가명·18)는 한국에서의 3년을 '악몽'이라고 말했다. 필리핀에 남동생 2명과 여동생 1명이 있는 그녀는 16세가 되던 해 목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위조 여권으로 한국에 왔다.

그러나 동두천 미군기지 주변 클럽으로 보내진 그녀는 스트립쇼·성매매의 굴레에 갇혀버렸다. 잠잘 수 있는 시간은 하루 5시간 정도였고 하루 밤에 두세차례 몸을 팔아야 했다. 잘못을 저지르면 하루 3시간씩 골방 감금이라는 벌칙을 받았다. 계약에는 한달에 44만원을 받기로 했지만 업주는 자신이 통장을 관리하며 봉급을 한번도 주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로즈는 도망쳤고, 필리핀 대사관의 도움으로 지난 8월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외국인여성노동자상담소가 11일 공개한 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외국인여성노동자상담소는 이날 '국내 성산업 유입 외국여성 조사보고회'를 열고 이태원·의정부·평택·동두천 등 4개 지역 유흥업소 31곳을 다니며 외국 여성 70명을 면접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본지 12월 7일자 34, 35면 중앙르포 인터걸).

보고서에는 필리핀과 호주의 여성 연구자들이 지난 7∼11월 수도권의 미군 주둔 기지촌 일대 클럽에 잠입해 직접 면담한 내용이 담겨 있다.

조사 대상 여성 중 4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예술흥행(E6) 비자로 국내에 들어왔으며 비자는 현지 송출업체를 통해 쉽게 취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입국에 드는 비용에 대해선 "전혀 내지 않았다"고 응답한 여성이 21명으로 가장 많아 송출비용이 빚으로 전환돼 성매매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확인됐다.

조사 업소 가운데 '2차(성매매)'를 하지 않거나 확인되지 않은 곳이 12곳이었으며 나머지 19곳에선 2백∼5백달러(약 24만∼60만원)에 성매매를 강요, 수입의 50∼84%를 업소 주인이 빼앗았다.

특히 조사대상 여성들은 대부분 "한달에 하루만 쉬었으며 지각·결근시 최고 2백달러까지 벌금을 내야 했을 뿐 아니라 수시로 감금과 폭행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상담소 조진경 간사는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인권 침해가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다"면서 "정부가 나서 성매매·인신매매 방지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해결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궁욱 기자

periodista@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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