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鄭공조 갈림길 선 '夢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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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몽심(夢心·정몽준 대표의 마음)은 누구도 몰라.

대선 후보 못지 않게 판세와 정치권의 흐름, 미국 문제에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국민통합21의 정몽준(鄭夢準)대표다. 통합21의 관계자는 "노무현(盧武鉉)후보와의 선거공조에 대한 자신의 결정이 선거에 영향을 준다는 확신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제 마음 자기도 모르는 사람이 鄭대표인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盧·鄭연대의 기상도는 하루 단위로 '햇볕 쨍쨍'에서 '짙은 먹구름'사이를 오가고 있다. 10일 오전 鄭대표는 당직자회의에서 전성철(全聖喆)정책위의장에게 "민주당과 정책조율을 오늘까지 끝내라"고 지시했다. 그리곤 서정화(徐廷華)정치연수원장이 "인천지역의 민주당 사람들은 盧후보와 鄭대표가 12일 합동유세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하자 빙긋이 웃으면서 "그래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즉각 盧·鄭 회동을 비롯한 공조 임박설이 퍼졌다.

그랬던 鄭대표는 11일 오전, 회의 석상에서 全의장에게 "어제 TV토론에서 행정수도 이전비용을 盧후보가 4조∼6조라고 했는데 그게 가능하겠어요. (불가능하다는)당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세요"라고 했다. 그리곤 민창기(閔昌基)특보가 "공조 가동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정책조율에 자구 수정을 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유보적 반응을 보였다.

단일화 협상을 책임졌던 閔특보는 회의 뒤 기자회견을 자청, "오늘은 되겠지, 내일은 되겠지 하면서 2주일을 보냈다"며 鄭후보의 우유부단한 행태를 지적하고 탈당 선언을 했다.

정책공조 협상을 맡아온 전성철 의장의 태도도 오전·오후가 달랐다. 오전에 그는 "우리의 대미정책 반영 요구에 민주당 측이 답변을 안하고 있다"며 "정책공조 없이는 선거공조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오후에 민주당 측의 답변이 오자 全의장 등 협상단 회의의 분위기가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이같은 시시각각의 기류 변화는 책임총리제 운영을 문서로 보장해 달라는 요구를 盧후보가 거절한 때문이라고 한다. 盧후보 측은 '나눠먹기'라는 비난을 의식해 이같은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소신'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鄭대표는 "盧후보가 지지율이 오르니까 자력 승리가 가능하다고 보는 모양"이라고 냉소적 반응도 보였다고 한다.

鄭대표가 발을 빼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데는 한나라당의 집요한 공세도 한몫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고위당직자들이 여러 채널을 통해 "지금 같은 자세만이라도 제발 유지해 달라"는 부탁을 해오고 있다는 게 鄭대표 측 얘기다.

동시에 鄭대표가 공조효과를 높이기 위해 타이밍을 계산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어 향후 전망은 통합21 관계자 누구도 자신있게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鄭대표의 리더십에 의문을 표시하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閔특보의 탈당과 관련해 "참모들을 필요할 때만 써먹고 쉽게 갈아치우는 용인술에 인간적 모욕을 느낄 때가 많았다"는 얘기도 들리는 실정이다.

전영기 기자

chuny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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