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미사일 선박 나포]시멘트 부대 밑서 미사일 찾아내 : '서산호'나포 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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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홀트! 홀트!(Halt·멈춰라)"

9일 새벽(현지시각), 소말리아 동북쪽 9백여㎞ 지점의 인도양 북서부 해상. 이곳을 순시 중이던 스페인 해군의 프리깃함 나바라호가 다급한 톤으로 경고방송을 시작했다. 선적(船籍) 표시가 불분명한 데다 뱃머리에 적힌 선명(船名)도 덧칠한 흔적이 뚜렷한 괴선박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괴선박은 경고방송에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더니 돌연 속력을 높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타 타 탕!" 나바라호 선두(船頭)의 기관총 총구가 불을 뿜었다. 정선(停船)경고를 무시한 괴선박을 겨냥한 경고사격이었다. 우박 같은 총탄 세례가 괴선박 주변에 퍼부어졌다. 마침내 괴선박은 멈추어 섰다. 나바라호는 무장한 수색대원 10여명을 헬기에 태워 괴선박에 내려보냈다.

수색대는 선장 이하 선원 21명 전원을 체포한 뒤 갑판 아래 창고로 내려갔다. 선원들이 "시멘트를 쌓아둔 곳"이라고 말한 곳이었다.

수색대는 창고를 메운 시멘트 부대 4만여개 사이에서 컨테이너 박스 20여개를 발견했다.

박스를 하나씩 열어젖히자 15기의 스커드 미사일이 드러났다.

놀란 수색대는 즉각 '항구적 자유' 훈련을 총지휘하는 미 해군 5함대 사령부에 연락했다. 현장에 급파된 미 해군 전함 나소호의 폭발물 감식팀은 미사일이 북한산 스커드임을 확인하고 괴선박을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 미군기지로 예인토록 했다.

괴선박 선장은 체포 과정에서 "우리 배는 정선 경고를 전혀 듣지 못했다"며 도주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괴선박의 정체는 곧 드러났다. 지난달 중순 남포항을 출발한 북한 화물선 '서산호'였다.

미국 관리들은 이미 이달 초 미사일을 실은 북한 선박이 지난달 중순 북한을 떠나 예멘으로 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은 이 때부터 이 선박을 추적해 왔으며 면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스페인과의 공조작전을 펼친 끝에 이날 선박을 나포한 것으로 보인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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