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펌프장이 부른 ‘노곡동 물난리’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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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 16일 대구시 노곡동에서 119구조대가 침수된 승용차를 옮기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침수를 막기 위해 만든 배수펌프장이 오히려 수해를 불렀다.”

대구시 북구 노곡동 주민 김재철(61)씨는 “배수펌프장이 없을 때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십억원의 예산을 들인 시설이 마을을 물바다로 만들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은 16일 오후 폭우로 저지대에 물이 차면서 건물 60여 채와 차량 30여 대가 물에 잠겼다. 앞서 지난달 17일에도 72가구가 물에 잠기고 차량 118대가 침수피해를 봤다. 원인은 모두 마을 앞 배수펌프장의 제진기(除塵機)가 작동하지 않아서다. 제진기는 배수구로 유입되는 나뭇가지 등 쓰레기를 제거하는 장치다. 쇠창살로 된 스크린에 걸린 쓰레기를 밖으로 걷어내야 배수펌프가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스크린에 쓰레기가 쌓이면서 댐 역할을 한 것이다.

노곡동이 한 달 새 두 차례 침수 피해를 입자 경찰이 본격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배수펌프장에 문제가 있는지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특히 침수 당시 제진기가 작동하다 갑자기 멈춘 점에 주목하고 있다. 처리 용량이 떨어지는 모터를 설치했거나 배수로를 잘못 설계해 수해가 발생했는지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배수펌프장 설치공사 담당부서인 북구청 건설과 공무원과 현장의 감리업체 관계자를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

대구경찰청 강영우 수사2계장은 “두 차례 수해가 난 만큼 배수펌프장의 설계와 시공상의 문제에 수사의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와 함께 지난달 17일 발생한 수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배수펌프장 공사 감리단장과 북구청 관련 공무원 등 5명을 사법처리하기로 했다.

경찰에 따르면 감리단장 최모씨는 당시 호우주의보가 발효됐는데도 배수펌프를 작동시키지 않아 수해를 초래한 혐의(과실 일수)를 받고 있다. 또 북구청 직원들은 업무수칙에 따른 비상근무를 하지 않아 직무를 유기했다는 것이다. 업무수칙에는 폭우 등 자연재해 시 직원에게 연락하고 재난 부서 인원의 절반이 근무토록 돼 있다.

주민들은 근본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날 제진기는 정상적으로 작동됐다. 하지만 나뭇가지 등 쓰레기가 계속 유입되자 갑자기 작동을 멈추었다. 이수환(43) 노곡동 수해 주민대책위원장은 “배수펌프장의 제진기가 쓰레기를 제거할 수 없을 정도로 처리용량이 작게 설계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북구청은 물길을 막는 배수펌프장의 스크린을 우선 철거했다. 또 배수펌프장을 건설하면서 폐쇄한 옛 배수로(폭 3m, 높이 2.5m, 길이 40m)를 복구하기로 했다. 스크린 등 장애물이 없어 폭우 때에도 물이 바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홍수 때 유량을 조절하는 유수지와 마을을 우회하는 새 배수로도 만들기로 했다. 허운열 북구청 도시국장은 “주민과 협의해 근본적인 수해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시의회 건설환경위원회(위원장 양명모)는 ‘노곡동 침수피해 조사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사에 들어갔다. 소위원회는 ▶침수피해 원인 규명▶재난상황 관리 매뉴얼에 따른 대처 여부▶배수펌프장의 설계·시공상 문제점 등을 조사한다.

한편 노곡동 배수펌프장은 북구청이 31억9800만원을 들여 지난해 6월 착공했으며 올 10월 완공 예정이다.

글=홍권삼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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