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노릇 톡톡히 할 한약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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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약시장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동의보감』 등의 처방에 따라 한약재를 배합·제조한 의약품의 생산은 2002년부터 연평균 -14%의 역성장을 하고 있다. 2008년에는 1500억원대로 주저앉았다. 한의원에서 사용되는 한약재의 생산도 2008년(1037억원)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반면 한약재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개발한 천연물 신약은 완전히 다르다. 쑥으로 알려진 ‘애엽’의 추출물을 위염치료제로 개발한 ‘스티렌’은 단일 품목으로 2008년 약 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홍삼을 이용한 건강기능성 식품은 2007년 매출액이 3500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한약에 과학의 옷을 입히면 얼마든지 새로운 시장이 창출될 수 있다.

중국·일본·대만에선 『동의보감』의 처방대로 제조한 의약품이 과립제나 액제로 판매되고 있다. 일본에선 쌍화탕 등 210개 처방의 의약품이 생산돼 우리나라의 7배 가까운 약 1조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일본 제약사들의 제품은 국산보다 3∼5배 비싸게 팔린다.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이 시장을 놓고 한·중·일의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가 예고된다.

이제부터는 한약제제의 제형(의약품을 용도에 맞게 적절한 형태로 만든 것) 개발에 대한 연구 지원이 필요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이미 의약품 허가심사규정을 정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개발 의욕이 꺾이지 않도록 최초로 허가된 신제형의 경우 일정 기간 복제품의 허가를 까다롭게 하는 규정을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 한때 우황청심환을 마시는 액으로 개발해 한약제제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듯했지만 후발 주자의 무차별적 복제품 출시로 지금은 새로운 제형 개발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제약산업은 FTA와 특허분쟁 등으로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그러나 한약제제는 오히려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동의보감』에는 약 4600개의 처방이 수록돼 있어 이를 의약품으로 개발할 수 있다. 또 지금까지 복용해 온 탕약을 휴대와 복용이 간편한 제형으로 개발한다면 중국·일본 등에도 진출할 수 있다. 우리 조상의 유산을 이용하기에 개발비가 덜 들고, 특허분쟁의 소지가 없다. 그래서 한약제재 산업의 성장 가능성은 높을 수밖에 없다.

강신정 식품의약품안전청 생약제제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