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이 형 아픔 내가 설욕" 안현수, 오노 제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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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선에 선 안현수(신목고·사진)의 얼굴에선 비장함이 묻어났다. 지난 2월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에서 석연찮은 판정으로 금메달을 빼앗긴 김동성 선배의 한을 풀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1백11m 트랙을 27바퀴나 돌아야 하는 장거리 레이스. 상대는 어차피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뿐이었다.

'탕'하는 출발 소리와 함께 안현수는 오노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지난달 열린 월드컵 3차대회부터 다섯차례의 맞대결에서 모두 패한 아픔도 다시 겪긴 싫었다.

스물다섯 바퀴를 돌자 숨이 턱끝까지 차 올라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오노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여기서 스퍼트를 하지 못한다면 패배는 불보듯 뻔하다. 안현수는 코너를 돌면서 오노를 힐끗 쳐다본 뒤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오노에게 '할리우드 액션'을 할 빌미도 주지 않았다.

한국 쇼트트랙의 차세대 에이스 안현수가 9일 이탈리아 보르미오에서 벌어진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 4차대회 마지막날 남자 3천m 수퍼파이널에서 5분3초094의 기록으로 골인, 오노(5분3초666)를 제치고 우승했다.

지난달 이후 오노와의 여섯번째 맞대결에서 승리한 안현수는 춘천에서 열린 1차 대회에서 개인 종목을 석권한 이후 처음으로 다시 정상에 서는 기쁨도 누렸다.

안현수는 이번 대회 개인종합에서는 오노(89점)에게 뒤져 2위(55점)에 그쳤지만 월드컵 랭킹에서는 여전히 선두(1백94점)를 달리고 있다.

여자부에서는 1, 2차 대회에서 개인종합우승을 차지했던 최은경(세화여고)이 4관왕에 올랐다.

첫날 1천5백m 정상에 올랐던 최은경은 1천m에서 1분31초469를 기록해 예브게니아 라다노바(1분31초486·불가리아)를 제치고 우승한 데 이어 3천m 계주와 개인 종합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해리(세화여고)도 3천m 수퍼파이널에서 5분44초249로 최은경(5분44초452)을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정제원 기자

newspoe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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