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걸(中):입국비 "회사 부담" 홍보 와보면 빚… 수렁 내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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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외국 여성들은 현지 브로커와 계약하는 순간 성매매의 수렁에 빠진다. 공연기획사가 대신 내주는 입국 비용이 그대로 빚으로 남기 때문이다. 물론 자발적 윤락도 많지만 적지 않은 여성들은 이런 매매춘 강요 구조의 희생자들이다.

법무부는 필리핀·러시아 여성이 국내에 들어오기 위해 서류 발급 수수료와 항공료 등으로 1백20여만원씩이 든다고 보고 있다. 브로커들은 현지에서 "한국의 공연기획사가 비용을 모두 부담한다"고 홍보한다. 러시아·필리핀 등 월평균 임금이 10여만원에 불과한 나라에서 이 정도 돈을 낼 수 있는 여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기획사가 진짜 이 돈을 내주진 않는다. 여성들이 들어와 취업한 뒤 받는 월급에서 빼내가는 것이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외국 여성들이 받는 월급은 50만원선. 따라서 입국 비용을 갚기 위해 2∼3개월을 수입없이 지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여성들은 고향에 송금할 돈을 벌기 위해 매매춘 시장으로 몰리게 된다.

외국 여성들이 서명한 계약서에는 대부분 '업무에 불성실하게 임할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일부 악덕 업주들은 '노예문서'나 마찬가지인 이를 악용해 지각·결근 등의 이유를 들어 수백달러씩의 벌금을 물린다.

또 '숙식을 제공한다'는 계약조건과는 달리 국내 체류에 드는 비용을 여성들에게 부담시키는 업주들이 많다. 이러다 보니 성매매의 대가로 업주가 주는 '특별수당' 5만∼7만원이 유일한 수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외국 여성들은 매매춘 시장으로 내몰리면서도 신고를 꺼린다. 자칫 윤락사범으로 강제 출국당할 위험이 있는 데다 신고 사실을 알게 된 기획사가 계약을 파기하면 불법 체류자가 되기 때문이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강제 성매매가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수사를 해도 현장을 덮치지 않는 한 여성들이 업주들보다 더 완강히 윤락 사실을 부인한다"며 "가끔은 여성들이 업주와 공범이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인여성노동자상담소 조진경 간사는 "피해 여성들은 불안한 신분 때문에 전형적인 착취구조에 빠져 매춘에 내몰린다"며 "이들을 자발적 윤락녀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이무영·김승현·남궁욱 기자

justice@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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