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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국프리즘

의학의 문제와 한국의 르네상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연 말 한의사의 CT사용에 대한 행정소송 판결이 있었다.

한의사의 CT사용을 부당면허행위로 판단한 보건당국의 3개월 업무정지처분에 대한 취소청구 재판 판결이었다.

피고는 보건소측, 피고의 보조참가인은 대한영상의학회 이었는데 단순한 업무정지처분에 대한 과소를 판단할 것으로 예측 되었었다. 예측과 달리 피고측의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하면서 판사는 의료의 본질에 대한 단순한 논거를 제시하였는데 이 것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양한방 이원화 체계로 이루어져 있는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의 모순과 연결되면서 일파만파의 논쟁으로 파급되어가고 있다.

재판부는 첫째 한의사의 방사선 진단행위가 한의사 면허 외의 행위인지를 판단하는 내용에서 한방의료 행위의 내용이나 특정한 의료행위의 허용 또는 금지에 대하여 의료법이 구체적으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 CT를 사용한 방사선 진단행위를 특정하여 다른 면허제도를 마련하여 두고 있지는 않으며 달리 한의사에 대하여 CT기기의 사용이나 이를 통한 진단행위를 금지하는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즉 법령에 구체적 금지 조항이 없으므로 면허 외의 행위는 아닐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둘째 한의사의 방사선 진단 행위가 한의학상 인정되는 의료 행위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내용에서 현대의학의 문진, 시진, 청진, 타진, 촉진, 기타 과학적 방법처럼 한의학도 望診, 問診,聞診, 切診이 있으며 그중 망진, 문진, 문진은 의학계에서의 시진, 문진, 청진과 동일할 것 이라 서술하고 CT는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인체의 내부를 X-선과 컴퓨터를 이용하여 화상화하여 관찰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인바 한의사가 환자의 용태를 보다 정확하게 관찰하기 위하여 그 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망진의 수단 또는 방법에 해당한다 할 것이고 이를 한의학에서 허용되지 아니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 하였다.

셋째 방사선사를 통한 CT촬영이 한의사 면허 외의 의료행위인지 여부의 내용에서 현행법 하에서 한의사의 지시는 위법이지만 한의사의 방사선진단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의사의 방사선 진단행위가 한의학상 인정되는 의료행위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볼 수 없다. 즉 한의사의 CT기기 등 영상기기의 이용은 진단과정에서의 정확한 진단을 위한 정보의 확대를 의미 할 뿐이어서 비록 양의학에서 개발된 기술이라 하더라도 한의사에 의한 이용을 금지 하여야 할 합리적 사유를 발견하기 어렵다하면서 오히려 한의사도 방사선진단행위를 동등한 조건에서 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고 기술하다.

이제 일심이고 재판부가 역사적, 철학적문제가 내포된 의학의 문제를 한번에 정확히 판단하는 것은 무리 일 것이다. 1심 판결의 결과 한의계는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이 문제가 더욱 확대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숨기지 않는다. 일단 한의측에 유리한 내용 같지만 판단 여하에 따라 의학 이원화의 불합리성을 상식선에서 지적하는 진보적 내용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의학계는 유례없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학계와 개원가, 병원계를 망라한 비상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의사협회는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에 몸둘바를 모르고 있다.

의사협회는 차지에 의료일원화 문제를 국가적 담론의 문제로 제기하고 세계에 유일한 의료 이원화제도를 폐기하는데 전력투구 할 것으로 보인다.

의사협회는 1심의 판결은 많은 논리적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 주장한다.

첫째 법령에 명시된 금지조항이 없음을 주 근거로 하여 판결의 논리로 채택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관습법적으로 형성된 불합리한 의료이원화 체계 현실에 대한 전제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결과이고 논리적으로는 순환론적 오류라는 것이다. 양, 한방 의료 행위에 대한 명확한 한계규정을 법령자체에 넣을 수 없는 것은 원래 의학이 하나이기 때문이고 의학에는 고대의학과 현대의학이라는 구분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라 주장한다. 또한 양, 한방 의술행위는 관습적으로 확연히 구분되고 의료보험급여규정에도 명확히 구분 기술되어 있음으로 근거 규정이 없다는 논거 또한 무리이고, 무엇보다도 의학 본질의 문제에서 무형(無形)의 음양허실을 판단하는 한의학의 대전제와 유형(有形)의 조직과 장기의 형태학적 병리상태를 진단하는 현대의학과의 차이점을 재판부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여 CT, MRI, PET, 초음파 등의 현대의료기기는 한의학적 진단의 결과인 음양허실의 상태를 판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한방계의 이권다툼으로 보이는 일견 단순한 이 사건에는 우리나라가 치르지 못한 역사의 문제가 내포되어있다. 근대 이 후 서구문명과의 충돌과 재조정의 문제가 아직 우리나라에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명치유신은 의학의 문제를 통찰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한다. 음양오행관에 의한 오장육부의 관념적 동양의학과 해부학에 근거한 서구의 근대의학의 충돌을 지난한 변증과정을 통하여 재정리한 결과 관념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 또한 20세기 초 손문, 루쉰을 거쳐 모택동까지 의학의 문제를 포함한 구시대의 문제에 대한 치열한 담론과정을 거쳐 내었다.

우리는 일본은 막론하고 어느 면에서는 중국보다 더욱 교조적 유교사회 인 것은 사실이다. 이제 우리도 진정한 정신적 르네상스를 이룩해야 되겠다. 의학의 문제에서 비롯된 이 역사의 문제에 대하여 전 학문 분야를 망라한 지식인 사회, 시민단체의 치열하고도 생산적인 담론을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광주·전남 개혁연대 공동대표 유용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