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후보 회견 내용]"한나라 현의원 새 정부 각료 배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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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가 8일 정치개혁과 부패청산을 위한 고단위 처방을 내놨다. 20∼30대 젊은층과 개혁성향 유권자들의 표심을 겨냥한 것이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의 '낡은 정치 청산, 새 정치 구현' 슬로건에 대응하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그가 밝힌 정치쇄신안은 ▶새 정부 구성 때 한나라당 현역의원 배제▶원내 중심의 정당 개혁▶정치개혁 국민위원회 구성▶개헌 추진▶정치보복 금지▶공적자금 등 모든 권력비리에 특별검사 임명▶정무직 공무원 재산의 백지신탁제 도입 등이다.

눈에 띄는 것은 "저와 제 가족이 어떤 권력형 비리에라도 연루되면 즉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며 부패청산에 대한 강한 의지를 약속한 대목이다. 대통령 친인척의 권력비리가 반복되는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특검 대상"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새 정부에 현역 의원을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약속도 눈길을 끈다. 1997년 대선 직전엔 당시 권노갑(權魯甲)의원 등 김대중(金大中)후보의 가신 출신 의원 7명이 "집권하면 어떤 주요 임명직 자리에도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李후보는 "3권분립의 원래 의미에 충실하기 위해서"라고 현역 의원 제외 이유를 설명했다. 미국식 대통령제를 염두에 뒀다는 얘기다. 원내 중심 정당개혁을 약속한 것도 같은 뜻이다. 크게 보면 "깨끗하고 유능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그의 선거구호에 맥이 닿아있다. 김영일(金榮馹)사무총장은 "새 정부는 의원이 아닌 전문가들로 '코리아 드림팀'을 꾸리되, 거기에 참여한 고위 공직자의 재산은 백지신탁제로 투명하게 관리하겠다"고 설명했다. 李후보 측은 "미국에선 고위 공직자가 주식을 백지신탁하는 정도지만 '이회창 정부'는 유가증권뿐 아니라 부동산까지 신탁하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치개혁국민위원회 구성의 아이디어는 박근혜(朴槿惠)의원 복당(復黨) 때 약속된 내용이다. 각계 전문가와 양심세력으로 위원회를 만들어 정치개혁 실천방안을 연구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정치보복 금지'는 선언적 약속에 해당한다. 李후보는 당초 '과거 정권의 권력비리는 조사하되 처벌하지 않는다'는 만델라식 해법을 검토했다고 한다. 하지만 "초법행위 논란을 부를 수 있고 부패청산 의지를 희석시킨다"는 반론에 부닥쳤다고 한다.

그가 "당선되면 모든 재산을 서민과 어려운 사람들에게 헌납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민주당 공세를 염두에 둔 것이다. 기자회견의 원안엔 없던 내용이다. 李후보는 기자회견 직전 고위선거전략회의에서 "민주당의 서민 대 귀족 주장에 맞서려면 李후보가 모든 것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채택했다고 한다.

李후보는 2∼3일 간격으로 경제 및 남북문제에 대해서도 이같은 포지티브 공약을 제시한다는 구상이다. 신경식(辛卿植)대선기획단장은 "깨끗한 정치와 새 정치란 화두는 李후보의 트레이드 마크였는데 야당총재 때의 투사 이미지만 부각됐다"며 "포지티브 공약을 통해 잃어버린 개혁 이미지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상연 기자

chois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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