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KGB 스파이와 '10년 밀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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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인슈타인과 10년간 밀애를 나눴던 마가리타 코넨코바 부인.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10여년간 소련 스파이와 열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독일 월간 정치평론지 치세로 1월호에 실린 '아인슈타인의 위험한 사랑'이란 제목의 표지 기사에서 밝혀졌다. 이 기사는 러시아 코넨코바 박물관의 사서 스베틀라나 보브로바가 발굴, 보관해 온 사진.편지.메모 등을 근거로 했다. 보브로바는 올해 아인슈타인의 서거 50주년, 상대성 원리 발표 100주년을 맞아 자료를 공개했다.

소련 스파이는 러시아의 유명 조각가인 세르게이 코넨코바의 부인 마가리타였다. 마가리타는 1923년 소련에서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유명 음악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노어 등과 가깝게 지내며 미국 상류사회에서 인기가 높았다.

35년 아인슈타인(당시 56세)은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하기 위해 코넨코바의 화실에 갔다 마가리타(당시 39세)를 처음 만났다. 매혹적인 자태와 세련된 매너에 홀딱 반했다. 마가리타는 "아인슈타인은 매우 흥분해 상대성 이론을 설명했다. 내가 관심을 보이니까 편안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는 메모를 남겼다. 1년 후 아인슈타인의 두 번째 부인이 죽자 둘 사이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마가리타는 아인슈타인의 집도 자주 찾아갔다. 두 사람은 몇년 동안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샤라넥 호수에 있는 아인슈타인의 요트에서 밀애를 즐겼다.

마가리타는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소속 스파이였다. 남편도 몰랐다. 저명 물리학자의 핵무기 개발 상황 정보를 캐내는 것이 임무였다. 당시 원폭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소장이던 로버트 오펜하이머에게도 접근했다. 마가리타의 직속 상관은 "그녀는 베테랑 첩보원"이라고 평가했다. 마가리타 덕분에 소련은 미국의 첫 원폭실험 성공 정보를 곧바로 입수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45년 소련 당국은 마가리타 부부를 소환했다. 마가리타는 귀국 직전 아인슈타인에게 뉴욕 주재 소련 총영사관의 정보 책임자를 만나줄 것을 부탁했다. 아인슈타인은 마가리타가 스파이란 사실에 당황했지만 소원을 들어 주었다. 자신이 차고 다니던 시계도 이별의 선물로 줬다. 그는 45년 11월 모스크바에 있던 마가리타에게 "당신을 많이 생각하고 있소. … 소련 영사를 만났소. 키스를 보내며. 당신의 아인슈타인"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애인을 그리는 애절한 마음을 전했다.

마가리타는 그러나 귀국 후 무미건조한 사회주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우울하게 지냈다. 80년 모스크바에서 영양실조와 가난 속에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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