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善惡 가르치는 도덕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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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신문왕' 조셉 퓰리처의 이름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연상시킨다. 미국 언론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과 선정주의 보도를 뜻하는 '황색 언론'이 그것이다. 그만큼 퓰리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이 책은 그에 대한 단편적이고 표면적인 우리 지식을 보완해 줄 내용으로 가득 찬 평전이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우선은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사례로 읽을 수 있다. 헝가리 출신 용병으로 미국에 온 그가 남루한 옷차림 때문에 출입을 거절당한 호텔을 나중에 사들여 그 자리에 신문 사옥을 지을 정도로 성공한 스토리에 초점을 맞출 경우 그렇다.

뉴욕신문 최초로 기사와 그림-19세기말엔 사진의 이용이 자유롭지 못했다-의 결합, 체육부와 일요판 신설 등 탁월한 경영 감각을 발휘해 발행부수 세계 최대의 신문을 일궜다는 점을 눈여겨 보면 저널리즘의 발달사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는 선정주의와 관련한 논란, 정치와 언론의 관계 설정이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878년 자신의 신문사를 시작한 퓰리처의 입장에서는 신문은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는 수단이자 돈벌이 수단이었다. 나아가 특권층이 아닌 '대중'을 위한 봉사와 민주주의란 신념을 퍼뜨리는 도구의 성격이 강했다.

그의 왕국 '뉴욕 월드'는 살인·상해사건, 뇌물 수수 등에 대한 기사를 게재해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이는 자신의 사회개혁운동에 많은 독자들을 참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프랑스 탐험가, 꼬리달린 야만족 발견"같은 기사도 있었지만 여기자를 잠입시켜 여성 정신병원의 참상을 기사화하거나 성직자를 빈민가에 몇 주씩 살게 한 뒤 "빈민가보다 지옥에 사는 것이 낫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자유의 여신상 건립에 큰 몫을 했고 영국과의 전쟁 위기를 막아냈다. "선정적인 신문이 오히려 고귀한 사회적 목표에 봉사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이 빛을 발한 예다.

한편 퓰리처의 정치 참여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기괴할 정도다. 기자이면서 주하원의원, 민선 경찰국장을 지냈고 신문사 사장이면서 연방하원의원으로 활약했다. "난 외국인이니 될 수 없지만 대통령을 만들어낼 수야 있겠지"라며 클리블랜드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파나마운하와 관련된 부패 혐의자를 감싸는 루스벨트 대통령과 장기 투쟁을 벌이는 동안 구속의 위협을 받은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재미없는 신문은 죄악이라고 믿은 신문사주,보통사람을 대신해 권력을 감시했던 언론인, 신문기자를 전문직으로 믿고 이를 위해 1912년 컬럼비아대학 내에 최초의 언론대학원을 열고 퓰리처상을 제정한 선각자로서 퓰리처가 현대 저널리즘에 남긴 발자취는 크다.

그러길래 '뉴욕 저널'의 허스트와 부수경쟁을 벌이다가 노란 아이'(yellow kid)를 주인공으로 한 시사만화가를 뺏고 뺏기는 과정에서 황색언론이란 용어를 낳은 그의 선정주의도, 그가 사실을 왜곡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면죄부를 줄 만하다.

퓰리처는 "나는 신문이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르치는 도덕교사라고 믿는다. 신문은 반드시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 만약 신문이 형세를 관망하며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나는 무덤 속에서도 돌아누울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룰 수 없는 객관주의 보도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현대 언론이 한 번쯤 숙고해야 할 명제다.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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