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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심리학회 공동기획 - ‘한국인 맞춤형 행복지수’ 첫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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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극단의 편차 ‘중년의 행복’

한국인은 하루 중 언제 행복감을 가장 많이 느낄까. 많은 이가 ‘말할 때’와 ‘먹을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가장 행복할 때를 18점으로, 가장 불행할 때를 -18점으로 측정했을 때 말하기와 먹기는 모두 10점 이상을 기록했다.

여가활동을 할 때도 사람들은 행복을 느꼈다. 운동·산책·취미생활·종교활동 등 신체적·심리적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여가활동이 TV시청·독서·음악감상 등 정적인 여가활동에 비해 더 큰 행복감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과 연령에 따라 하루 중 행복감을 느끼는 시간이 달랐다. 연구팀은 만 19세 이상 한국인 160명을 학생(19~29세), 직장인(20~49세), 전업주부(30~59세), 노인(60세 이상)으로 나눠 이들이 하루 중 느끼는 행복감을 시간대별로 조사했다. 직장인과 대학생은 평일 저녁과 주말에 행복감이 차츰 높아진 반면, 전업주부는 평일과 주말 모두 낮 시간에 가장 행복했다. 직장인들은 퇴근 이후 가족과 함께할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꼈지만, 주부들은 가족이 없는 낮 시간에 더 행복을 느끼는 셈이다. 학생의 경우에는 친구나 선후배와 있을 때 가족과 함께하는 것과 비슷한 행복감을 느꼈다.

행복은 성별과 나이에 따라 달랐다. 고개 숙인 40대 한국 남성. 반면 40대 여성은 상대적으로 가장 행복한 것으로 조사됐다. 40대 남성들은 다른 집단과 비교할 때 개인적 측면(자신의 성취·성격·건강)은 물론 사회적 측면(인간 관계·소속집단 관계)에서 모두 만족 수준이 낮다. “삶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 40대 남성이 행복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다. 40대 남성을 제외한 모든 집단의 ‘삶에 대한 흥미’ 평균 점수는 3.34점(1점: 전혀 느끼지 않는다, 7점: 매일 느낀다)이다. 반면 40대 남성이 삶에 흥미를 느끼는 정도는 평균 3.07점.

40대 남성의 가장 큰 고민은 ‘경제적인 문제’와 ‘일 또는 업무’였다. 이 두 가지는 한국의 성인 남녀 대부분이 갖고 있는 주요 고민거리다. 하지만 40대 남성들에게서 두드러졌다. 조사팀(팀장 서은국 연세대 교수)은 “사회의 생존경쟁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또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이라며 “자신의 일과 삶에 의욕이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40대 한국 남성의 자화상”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40대 중년 여성의 ‘가장 높은 행복감’도 흥미롭다. 40대 여성은 ‘긍정적 정서’를 자주 표현한다는 점이 주요 특징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즐거움·행복함 과 같은 긍정적 정서를 표현한 정도’를 물었다. 40대 여성의 평균은 5.08점. 다른 성인 남녀 집단의 평균 4.84점보다 비교적 높다(1: 전혀 표현하지 않았다, 7: 매우 자주 표현했다). 서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육아와 가사를 도맡아 하는 대다수 여성은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야 자신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며 “남성은 40대에 들어서도 바깥 활동에 계속 얽매이는 반면 여성은 40대가 되면 가사와 육아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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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팀은 행복해지기 위해선 ‘긍정적 정서 표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긍정적 정서는 그것을 숨기기보다 겉으로 드러낼 때 더 강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이와 관련, 독일 심리학자 프리츠 스트랙의 연구가 유명하다.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미소를 지을 수 있게 하고, 다른 그룹은 미소를 짓지 못하게 한 후 각각 재미있는 만화를 보게 했다. 그 결과 정서 표현을 억제한 집단보다 촉진한 집단이 더 큰 재미를 느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안면 피드백 이론(facial feedback theory)’이라고 한다. 표정이 감정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감정 상태를 변화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조사팀은 “한국인은 정서 표현에 인색하다. 한국 남자들은 감정을 표현하지 않도록 사회화된다. 슬퍼도 울지 않고 기뻐도 웃지 않는 남자가 진짜 남자라고 배운다. 이러한 문화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국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 행복 성적표는 50위권
경제 수준 못미치는 행복지수

경제 규모에 못 미치는 행복지수. ‘2010 한국인 행복지수’ 조사에서 드러난 한국인의 자화상이다.

한국인 행복지수는 평균 63.22점으로 중간치를 넘어 비교적 괜찮은 편으로 보인다(최상의 행복 상태를 100점). 그렇다면 대다수의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다소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팀은 ‘세계인 가치관 조사(World Value Survey)’의 가장 최근(2007년) 자료와 비교했다. 한국은 97개국 중 58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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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발전 정도를 감안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인의 ‘행복 성적표’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절반에도 못 미치는 나라들과 비슷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5693달러)·터키(1만471달러)·페루(4452달러)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우리보다 행복하다는 멕시코(1만234달러)·베네수엘라(1만1388달러)도 경제수준은 우리보다 크게 낮다.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평균은 71.25으로 우리보다 8점가량 높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덴마크는 80점이 넘는다. 한국인은 경제발전에 걸맞은 수준의 행복감을 누리고 있지 못한 셈이다.

조사결과는 ‘행복 심리학’의 대가로 꼽히는 에드 디너 미 일리노이대 석좌교수의 분석과도 맥이 통한다. 19일 한국심리학회 주최 학술대회 참석차 방한한 디너 교수는 “최근 130개국에서 모은 갤럽 자료를 분석한 결과, 높은 경제 수준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130개국 중 중위권이고, 기쁨과 같은 긍정적 정서를 느끼는 정도는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고 밝혔다. 디너 교수는 “한국은 특히 일상에서 느끼는 정서적인 행복 수치가 떨어진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어제 하루가 즐거웠다’는 데 동의하는 미국인은 86%이고, 아프리카의 짐바브웨에서도 68%의 사람들이 이 문항에 동의했지만 한국에서는 64%만이 동의한다.

◆세계인 가치관 조사(World Value Survey)=세계 각국의 사회문화적 변화 양상을 조사한다. ‘세계인 가치 조사 연합(World Values Survey Association)’의 주관으로 전 세계 사회과학자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진다. 6개 대륙 80개 이상 국가의 대표 표본에 대한 면접조사 방식이다. 1981년 처음 유럽을 중심으로 조사됐으며, 2차 조사부터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확대 실시됐다. 5년 단위로 실시되는 조사 자료는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



2010 한국인 행복지수 기존 조사와 무엇이 다른가

한국심리학회가 새롭게 개발한 ‘2010 한국인 행복지수’에는 한국인의 문화적 특징이 반영돼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서구에서 개발한 측정치를 사용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국인 행복지수는 서양에서 강조되는 삶의 개인적 측면(건강·성취 등)에 대한 만족 외에 대인관계와 소속집단에 대한 만족을 포함했다. 또 우리 역사·문화 속에 형성된 한국인 특유의 선호도를 찾아보려고 했다.

한국심리학회는 지난해 말 연구를 시작, 올해 5월 예비조사를 거쳐 6월 성인 남녀 1000명을 표본추출해 면접조사했다. 행복지수 조사팀은 이번에 개발한 행복 측정치의 이름을 ‘행복지수 축약본(COncise Measure Of SWB: COMOSWB)’으로 지었다. ‘Como’는 스페인어로 ‘얼마나(how)’를 의미하며, ‘COMOSWB’는 ‘당신은 얼마나 행복하십니까(How is your subjective well-being)’란 뜻이다.

행복지수 결과를 발표 하는 ‘2010 한국심리학회 학술대회’는 19∼21일 서울대 멀티미디어 강의동 및 문화관에서 열린다.

배영대·심새롬 기자

◆행복지수=행복을 유발하는 객관적 요건이 아니라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이라는 주관적·심리적 현상을 측정한 것이다. 경제수준(GNP), 교육수준, 주거와 교통환경과 같은 객관적 지표가 실제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도를 모두 반영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심리학에서 재는 행복의 정도는 개인이 ‘자기 삶에 만족하는 정도’와 ‘자주 느끼는 정서’를 기준으로 산출된다.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은 자기 삶에 만족하고, 부정적 정서보다는 긍정적 정서를 자주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임을 확인했다. 이번에 새로 개발한 ‘한국인 행복지수’ 역시 지금까지의 축적된 이론과 연구 결과 위에서 이뤄진 것이다. ‘2010 한국인 행복지수’는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0점, 가장 행복한 상태를 100점으로 놓고 측정했다.


>>> 당신의 행복지수 계산해 보세요


>>> 당신이 위치한 행복의 자리는

→ 행복지수 점수는 0점에서부터 100점까지다. 당신의 행복지수 점수가 0점에 가까울수록 당신은 행복하지 않은 것이고 100점에 가까울수록 행복한 것이다. 행복지수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자신이 상대적으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행복점수가 60점으로 절대적인 점수상으로는 행복한 편이라고 하여도, 주위 사람들이 모두 70점이라면 상대적으로 당신은 가장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나는 행복하지 않다’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 반면 점수가 40점이어도 주위 사람들이 모두 30점이라면 당신은 누구보다 더 행복한 것이다. ‘대한민국 1000명의 행복지수 점수 범위’표에서 자신이 처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63점이라면 당신과 유사한 만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한국인 중 27.1%(응답 비율)가 있다는 뜻이다. 40.7%(누적 비율)가 당신보다 덜 행복하다는 의미도 된다.



◆한국심리학회 ‘2010 한국인 행복지수’ 조사팀 ▶총괄진행=조성호(한국심리학회 총무이사) 가톨릭대 교수 ▶행복 지수 개발팀=서은국(팀장) 연세대 교수, 정태연 중앙대 교수, 이동귀 연세대 교수, 최인철 서울대 교수, 구재선 연세대 연구교수 ▶정신건강지수 개발팀=조용래(팀장) 한림대 교수, 고영건 고려대 교수, 신희천 아주대 교수, 임영진 서울대 교수, 하정민 한림대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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