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교 5곳 중 1곳꼴 내신 부풀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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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의 A고교. 1학년 1학기 과학시험에서 전체 학생 212명 중 58.5%인 124명이 90점을 넘어'수'를 받았다. '우'(80~89점)를 받은 학생도 43명으로 전체의 20.3%나 됐다. B고교의 국어시험에서는 1학년 전교생(355명) 중 52.1%가 '수'를, 27%가 '우'를 받았다. 10명 중 8명이 '수'나 '우'에 속하는 셈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말 서울 시내 195개 일반계 전 고교의 지난해 1학년 1학기 국어.사회.수학.과학.영어 과목의 성적을 분석해 19일 발표한 결과다.

지금까지 내신성적 부풀리기 실태가 부분적으로 지적된 적은 있지만 서울 지역 전체 고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내신의 신뢰도가 더욱 추락하게 됐고, 이는 내신 비중이 강화되는 2008학년도 이후 대입에서 대학이 내신 실질 반영비율을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과목별로 30% 이상의 학생에게 '수'를 주는 등 성적을 부풀린 학교가 다섯곳 중 한곳꼴인 것으로 드러났다. 과목별로 30% 이상의 학생이 '수'를 받은 학교는 ▶국어 37개교(18.9%)▶사회 40개교(20.5%)▶수학 29개교(14.8%)▶과학 47개교(24.1%)▶영어 45개교(23.1%)에 달했다.

조사 대상 5개 과목 중 3개 이상에서 30%가 넘는 학생에게 '수'를 준 학교도 전체의 12.8%인 25곳이 적발됐다.

과목별로 '수'를 받은 학생이 40%가 넘는 학교도 전체의 2~7%나 됐다.

시교육청은 이에 따라 새 학기 들어 성적 부풀리기 의혹이 있는 학교를 중심으로 특별 장학지도에 나서기로 하고 '성적 부풀리기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우선 '수'의 분포가 전체 학생의 25%를 넘을 경우 해당 과목에서 성적 부풀리기가 이뤄진 것으로 간주된다. ▶평균성적 75점에서 일반 교과는 2점, 예체능 교과는 3점을 초과하거나▶전년도 문제 내용과 비교해 지나치게 쉽게 출제된 경우▶평균점수가 전년도보다 10점 이상 올라간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 정기고사를 치른 뒤 '수'의 비율이 30%가 넘는 과목이 전체 시험 과목의 절반 이상일 때 학교 차원의 성적 부풀리기가 있었던 것으로 판정된다.

교육청은 이 같은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학교에 대해선 기관 경고, 학교 운영비 감액 등 행정.재정적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교육청은 또 지역교육청과 학교가 함께 학업성적 관리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성적 부풀리기를 막기 위한 대책을 수립해 실행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한국교총은 성명을 내고 "성적 부풀리기에 대한 대책은 필요하지만 획일적인 기준으로 성적 부풀리기 여부를 판단할 경우 학교의 자율성과 교사의 교육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면서 "일부 선택과목이나 예체능 교과에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현옥.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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