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253명의 대선후보 평가]李 교육·과기 盧 통일·노동 "비교우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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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6대 대통령 선거가 꼭 2주일 남았다.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18년 장기 집권 이후 한국 사회는 격렬한 민주화 투쟁과 정치적 기복을 겪으면서 제도와 관행을 개선해왔다. 하지만 아직도 국민 직선으로 선출된 대통령들도 재임 기간 중 계속 지지율의 하락을 겪고, 급기야 여론의 거센 비난 속에 퇴임하는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작업의 일환으로 중앙일보는 EAI(동아시아연구원·원장 金炳局 고려대 교수)와 함께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 정부에 대한 평가와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평가, 그리고 차기 정부의 과제에 대해 점검해본다.

편집자

한국의 대통령이 갖춰야 할 자질로 전문가들은 비전 제시와 추진력을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

동아시아연구원(EAI·원장 金炳局)이 지식포털사이트 이슈투데이(www.issuetoday.com)를 통해 대학교수 등 전문가 2백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복수 응답이 가능한 이 문항에서 비전 제시와 추진력은 34.9%였으며, 그 다음으로 공정한 인재 등용 능력(27.8%), 도덕성(23.2%)을 들었다. 이에 반해 국정수행에 필요한 전문지식(6.5%), 외교 능력(2.5%), 포용력(0.4%) 등은 별로 중시하지 않았다.

공약과 업무수행 능력에 대한 평가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는 국내 정치, 교육, 과학기술에서 60점 이상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모두 김대중(金大中)정부가 잘못했다고 지적받은 분야들이다.

반대로 노무현(盧武鉉)후보는 통일·외교, 여성, 노동 분야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김대중 정부가 상대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은 분야와 일치한다. 현 정부의 노선을 가장 잘 이어가는 후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후보별로 약한 분야도 마찬가지 경향을 보여 확실한 대결구도를 만들었다. 李후보가 약한 분야인 통일·외교, 노동, 여성, 보건·복지는 정확히 盧후보가 강한 분야다. 반대로 盧후보가 약한 교육, 과학·기술은 李후보가 강한 분야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權永吉)후보는 노동, 여성, 복지, 통일·외교 분야에서 강세를 보였다. 盧후보가 강한 분야와 일치해 차별성 부각이 과제임이 드러났다.

분야별 1위 획득 빈도수로 평가할 경우 李후보는 과학기술과 교육에서, 盧후보는 통일·여성·노동에서 각각 60% 이상을 얻었다. 정치·행정 등 각 분야에서 세부 항목별로 평가를 할 때 최고점수를 얻은 경우를 따져본 것으로 후보별 강점 분야를 확인해볼 수 있는 지표다.

이 경우 중요한 분야인 정치·경제·복지에서는 60% 이상을 얻은 후보가 없었다. 어느 후보도 이 분야에서는 확실한 신뢰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李·盧후보 모두 50% 미만으로 나와 경제문제의 어려움과 불확실성을 시사했다.

종합평가에서는 李후보가 63.9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근소한 차이로 盧후보가 61.6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權후보는 44.1점이었다.

그러나 분야별 평가점수를 평균한 결과는 盧후보가 61.1점으로 1위를, 李후보가 58.7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이는 명시적이지는 않으나 전문가들이 분야별로 가중치를 다르게 적용함으로써 생긴 간극으로 해석된다.

또 국민에 대한 약속에 대해 성실한 실천과 도덕성 측면에서 가장 믿음이 가는 후보를 묻는 질문에서는 盧후보가 38.3%를 얻어 27.5%를 얻은 李후보를 앞질렀다. 權후보는 11.7%였다.

후보들의 이념적 성향 평가에서는 李후보가 국민통합21의 정몽준(鄭夢準)후보(5.3)보다 더 보수적인 5.8(우)로 나왔다. 극좌-좌-중도좌-중도-중도우-우-극우를 각기 1에서 7까지 값을 주어 응답을 평균한 수치다. 盧후보는 김대중 대통령(3.5)과 비슷한 3.3(중도좌), 權후보는 2.4(좌)였다. 대체로 경제이념보다 대북 정책 등 정치적 이념을 더 고려한 평가로 보인다.

정리=김진국 기자

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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