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라크인들 "총선보다 순례"…하지 2005년에도 성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200만 무슬림들이 올해도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흰색 물결로 뒤덮었다. 18일 시작된 올해 성지순례(하지)는 중동의 각종 분쟁과 지진해일(쓰나미) 재앙에도 불구하고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 선거보다는 순례=올해 메카 순례객 중 가장 관심을 끄는 사람들은 이라크인들이다. 이라크인들은 비행기와 버스를 이용해 지난주부터 사우디의 메카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이라크 이슬람기구에 따르면 이번 성지순례에 75만명이 신청했다. 하지만 사우디로부터 할당받은 순례자 수는 겨우 3만2000명밖에 되지 않아 4%만이 순례에 참여하게 됐다.

그래픽 크게보기

이 같은 성지순례 열정에 대해 이라크 당국은 울상이다. 부르함 살리흐 임시정부 부총리는 "순례자 대부분이 30일의 선거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부총리는 언급했다. 순례 공식 기간은 22일로 끝나지만 제2의 성지인 메디나를 방문하고 대부분 다음달 초나 귀국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 녹초가 된 순례길=팔레스타인 순례객들의 발걸음은 가장 무겁다. 알자지라 방송은 19일 수백명의 팔레스타인 순례객들이 과도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자와 요르단강 서안 자치지구에서 사우디까지 오는 길이 너무 멀고도 험하기 때문이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팔레스타인 순례객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스라엘의 봉쇄 조치로 사우디를 향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종교당국의 집요한 요구로 이스라엘은 결국 가자지구의 4500여명 순례객들에게 버스로 이집트로 향하는 것을 이달 초 허용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집트.이스라엘 국경에서 시나이반도 서쪽 항구까지 이동한 후 며칠을 기다려 사우디로 향하는 배를 타야 했다. 일부 순례객은 메카에 도착하기까지 2주나 걸렸다고 불평하고 있다.

◆ 쓰나미는 잊자=쓰나미의 최대 피해국 인도네시아도 이번 성지순례에 대단한 열정을 보였다. 쓰나미 사망자 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잊기 위해 메카로 몰려들었다. 사우디 당국에 따르면 올해 성지순례를 하고있는 인도네시아인들은 약 20만명. 이들은 선박과 항공기를 이용해 쓰나미가 발생한 지난해 말부터 사우디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순례객 압둘라만은 "희생자들과 국가의 슬픔을 대신해 기도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강조했다.

◆ 테러와 압사 막아라=200만명의 순례객이 모이는 메카를 중심으로 사우디 경찰 및 보안당국은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사우디 정부는 약 5만명에 달하는 치안병력을 메카에 배치하는 등 불상사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특히 2003년 5월 이후 알카에다와 관련된 테러가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당국의 감시와 경계도 집중되고 있다.

지난 몇 해 동안 순례기간에는 무질서한 인파로 압사사건과 각종 사고가 속출했다. 지난해에는 악마의 세 기둥에 돌을 던지는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251명이 압사하는 참극을 빚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