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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 그러나 장중한 아카펠라 캐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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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거리에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럴. 떠들썩한 연말 분위기에 편승해 인기 대중가수나 개그맨들이 앞다퉈 음반을 내놓는다. 매년 오스트리아 빈의 시청앞 광장에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등이 출연해 꾸며 온 크리스마스 콘서트의 실황음반도 대중 취향이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끌벅적하고 들뜬 분위기의 캐럴이 전부는 아니다. 몇 안되는 히트곡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보석들도 많다. 차분하게 연말을 맞고 싶다면 특히 아카펠라(무반주 합창)의 담백하고 맑은 소리로 심금을 울리는 캐럴이 제격이다. 현란한 편곡의 군더더기를 걷어내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음반이다. 세월이 흘러도 다시 듣고 싶을 만큼 소장 가치가 높은 캐럴 음반을 소개한다.

◇낭만주의 시대의 크리스마스=우베 그로노스타이 지휘의 베를린 방송(RIAS)실내 합창단의 녹음(아르모니아 문디). 36명 규모의 아카펠라 전문 혼성 합창단이 섬세한 앙상블과 풍부한 울림으로 19세기 독일 작곡가들이 작곡·편곡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려준다.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세칠리아 운동(무반주 합창의 부활)의 여파로 브루흐·멘델스존·레거 등이 주옥같은 캐럴 합창곡을 남겼다. 에두아르트 뇌슬러의'내 백성을 위로하라', 막스 레거의'말씀이 육신이 되어', 멘델스존의'만국 백성들아 기뻐하라' 등 23곡이 수록돼 있다. 14세기부터 전해오던 캐럴을 낭만주의 어법으로 편곡한 것도 있다. 전곡을 독일어 가사로 부른다. 귀에 익은 캐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유명한 캐럴인 프란츠 그루버(1787∼1868)의'고요한 밤'이 유제비우스 만디제프스키(1857∼1929)의 편곡으로 실려 있다.

◇옛 캐럴과 현대 캐럴=폴 힐리어가 지휘하는 미국 프로 아르테 싱어스와 인디애나대 어린이 실내합창단의 녹음(아르모니아 문디). 15세기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전해오는 성탄 캐럴이 아카펠라 연주로 실려 있다. 모두 영어 가사로 부르며 매끈한 앙상블과 긴밀한 호흡이 탁월한 연주효과를 자아낸다. 소프라노·알토 등 여성 음역을 보이 소프라노가 맡아 이채롭다.

프로 아르테 싱어스는 인디애나대 음대 재학생으로 구성돼 중세·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합창곡을 연주하는 실내 합창단이다.

◇클래식 크리스마스=영국 런던심포니·할레 오케스트라 등이 유명 캐럴을 관현악으로 녹음한 연주회용 캐럴집이다(EMI).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영국 BBC의 프로듀서로 활약했던 지휘자 겸 작곡가 크리스천 헬리허친슨(1901∼46)이 쓴 4악장짜리 교향곡 '캐럴 심포니'와 본 윌리엄스의'크리스마스 캐럴 주제에 의한 환상곡'이다. 둘 다 송년 무대에 올려도 좋을 곡들이다. '캐럴 심포니'는 유명 캐럴 선율을 엘가풍의 교향곡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르로이 앤더슨과 프레드릭 델리어스가 각각 작곡한 '썰매타기'도 있다.

◇심포닉 오르겔의 크리스마스 캐럴=축음기가 발명되기 전 금속 원판에 달린 핀을 뜯어 2분 내외의 짧은 노래를 연주하던 자동악기인 레지나폰(1892년)으로 재생한 이색 성탄 캐럴 CD다. 영롱한 음색이 동화를 연상케 한다. 불 밝힌 성탄 트리 곁에 틀어 놓아도 좋을 듯하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lull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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