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3 대선후보 TV합동토론 정치분야]토론회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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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회창·노무현·권영길 후보간의 첫 3자 합동토론은 기세잡기 신경전과 가시돋친 설전으로 이어졌다. 모두발언에 나선 세 후보는 "우리 정치가 이젠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盧), "세상을 바꾸려고 출마했다"(權), "정권교체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李)며 슬로건을 부각시킨 뒤 바로 논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李·盧후보간의 양자대결이 아니어서인지 다소 긴장감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李·盧의 격돌=李·盧후보는 특히 부정부패 척결 대목에서 거칠게 맞붙었다. 李후보는 "대통령 아들들이 부패문제에 연루됐을 때 盧후보는 뭘 했느냐"면서 "정풍운동에 반대하고 동교동계를 비호했고 그 대가인지 몰라도 장관·후보까지 됐는데 어떻게 점포(민주당 지칭)를 연 주인이 바뀌었다고 하느냐"고 공격했다.

盧후보는 "장관이 된 것은 2000년이고 정풍운동이 일어난 것은 2001년"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97년 안기부 예산을 갖다 선거자금으로 썼을 때, 김현철씨 비리가 있었을 때 李후보는 뭘 했느냐"며 "말 못하긴 마찬가진데 남 나무랄 형편이 아닌 것 같다"고 맞받아쳤다.

세풍·안풍·병풍 의혹이 거론되자 李후보는 "이 정권이 있지도 않은 사실을 중상모략했지만 뭐가 나왔느냐"면서 "권력 핵심과 가까이 숨쉬어 여당 후보가 된 盧후보야말로 새 정치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톤을 높였다. 그러자 盧후보는 "김대중 대통령과 국사를 함께 나눈 일은 있지만 부정부패를 같이 나눈 일은 없다"고 반박했다. 盧후보는 "방탄국회를 열어 서상목 의원 해임안을 부결시킨 것도 모자라 전국민이 보는 데서 끌어안고 웃은 李후보가 남의 부패를 말할 자격이 있느냐"고도 응수했다. 李후보는 '국정원 도청' 문제를 지적하면서 오른손을 불끈 쥐고 책상을 치기도 했다.

설전은 3金정치 청산 논란으로 이어졌다. 盧후보는 "유력 일간지 여론조사 결과 66%가 '李후보가 3金과 같거나 더하다'고 답했다"면서 "국민이 왜 이렇게 생각하겠느냐"고 물었다. 李후보는 "여론조사로 후보 단일화를 하니까 여론조사로 여러가지를 평가하는 것 같은데…"라고 응수했다. 그러면서 "盧후보는 후보가 된 뒤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 시계를 보이고 부산시장 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게 구태정치 아니냐"고 공격했다.

李후보는 주한미군 주둔문제에 대한 盧후보의 답변이 나오자 "많이 오른쪽으로 돌아왔네요"라고 뼈있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변호사 출신인 李·盧 두 후보는 이날 李후보 주변인사들의 재판문제와 관련, "법조인이라서 잘 아실 것 같은데…"라며 법정싸움 같은 신경전도 벌였다.

李후보는 미소를 띤 가운데 가끔 웃음을 짓는 등 경륜과 여유를 강조하려 했고 盧후보는 발언 속도를 차분하고 천천히 가져가 안정감을 부각시키려 했다.

이날 토론에 앞서 李후보는 KBS 본관에 도착,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며 인사한 뒤 곧바로 건물 안으로 향했다. 盧후보는 부인 권양숙(權良淑)여사와 함께 도착했다. 盧후보는 미소를 띤 표정으로 "최선을 다하겠다. 오고 가는 상황 속에 자연스럽게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이정민·남정호 기자

jm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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