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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처민심르포-光州]"누가 돼도 똑같지만 찍을 후보는 盧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전남 강진이 고향인 박종배(40)씨는 6년째 광주에서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이 출마했던 97년 대선 때 그는 생업을 쉬고 하루 전 주민등록지인 강진에 내려갔다. DJ를 찍기 위해서였다. 지금 朴씨는 "누가 해도 똑같습디다. DJ가 하믄 여그가 좀 달라질지 알았지라. 지금도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겄는디 누가 대통령 된다고 이보다 더 나쁠랍디요"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이번에도 부재자 신고를 하지 않았다. 투표를 하려면 강진을 가야 하는데 "안갈거요"라고 했다.

광주는 조용하다. 대선을 코앞에 둔 지난 1일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유세차량이 중심가를 오가고 한나라당 운동원들도 눈에 띄지만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많지 않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지역 유권자들이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를 누르고 단일후보가 된 盧후보에게 높은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선거 열기는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종전에 비하면 큰 변화다. 대선 때마다 호남은 'DJ 열풍'에 휩싸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변화의 원인은 바로 DJ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맹목적이었지라. 수십년 밀어준 김대중씨가 대통령 됐을 때 다들 잔치하고 안했소. 원은 풀었는디 공장이라도 하나 생겼으믄 모를까 아들들 비리만 터지고 도청이나 옮긴다글고. 누가 사러와야 장사라도 해묵제 즈그들 배만 불린 거 아니겄소."

서구 양동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임정근(53)씨는 호남 대통령을 만들어도 나아진 게 없더라고 했다.

실망은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무현씨도, 이회창씨도 벨로여라. 자기 아들들 군대 안보낸 사람이 나라를 어떻게 맡을 것이요. 노무현씨는 신선한 감은 있는디 아직 대통령감은 아닌 거 같애라…."

전남대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조상훈(27·수학과 4년)씨는 투쟁하듯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권이 모두 싫다는 투다. "대통령이 누가 된다고 일자리가 갑자기 늘겄어요. 다들 대통령 되려고 이말 저말 하는 거지요. 솔직히 우리 코가 석자여서 모여도 선거 얘기는 별로 안합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 비해 盧후보의 득표율이 월등히 높을 가능성은 뚜렷해 보였다. 盧후보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힌 이들은 '정풍(鄭風·정몽준 지지 바람)'과 상관없이 일관되게 盧후보를 지지했던 경우가 많았다. "반드시 투표해 盧후보를 찍을 것"이라는 김덕중(50·자영업)씨는 "盧후보로는 안될 것 같은께 鄭후보한테 마음을 준 사람들이 있어도 여그서는 盧후보가 죽 1위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감정 깨겠다고 경상도서 출마해 낙선한 것 보믄 盧후보가 의리와 지조는 있는 사람"이라며 "혜택은 바라지도 않고 적어도 차별은 안할 거 아니요"라고 지지 이유를 설명했다. "투표를 한다면 출신과 성장과정이 서민적인 盧후보를 찍을 것"(전남대 2년 박영종·22)이란 반응도 나왔다. 광산구 운남동에 사는 주부 이순영(60)씨는 "팔이 밖으로 굽지는 않는디 찍을 사람이 盧후보 말고 또 있겄소"라고 했다.

3金이 사라진 상태에서 치러지는 첫 선거는 새로운 요구도 드러냈다. "한나라당이고 민주당이고 옛날 정치인들은 좀 싹 사라지고 젊은 사람들이 했으믄 좋겄어요. 노무현씨는 젊은께 되믄 바꿀 것이고, 이회창씨도 되믄 대쪽 이미지마냥 확 바꿔야 돼라." 양동시장에서 만난 김동현(51)씨는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정치권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치과의사인 김학근(32)씨는 "요즘은 광주에서 한나라당 표찰들고 선거운동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지역감정만 건드릴 게 아니라 정책과 예산으로 유권자를 유인하는 것이 득표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광주=김성탁 기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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