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어나더데이'한국판 우리 성우가 더빙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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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시리즈의 20번째 작품인 '007 어나더데이'(감독 리 타마호리)가 오는 31일 개봉한다. 그런데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되면 재미동포 배우 릭윤과 윌 윤 리의 능숙한 한국어 실력에 놀랄 것이다. 미국에서 성장한 그들이 언제 저렇게 모국어를 배웠지 하고 흐믓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더빙일 뿐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아닌 것이다. TV 영화도 아니고, 일반 극장에서 대대적으로 개봉하는 할리우드 영화에 한국어 더빙이 들어가는 건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다. 어린이 대상의 애니메이션이나 온가족 대상의 가족영화를 제외하곤 말이다.

사정은 이렇다. '007 어나더데이'에는 북한이 나온다. 제임스 본드(피어슨 브로스넌)와 대결하는 상대역으로 북한군 장교 문대령(윌 윤 리)과 북한군 강경파 특수요원 자오(릭윤)가 출연한다. 비무장지대(DMZ)에서 진행되는 도입부 등에서 문대령과 자오의 대화가 나오는데 이들의 발음이 어색해 한국 관객이 작품을 제대로 즐길 수 없게 되자, 영화를 수입·배급하는 20세기 폭스 코리아측이 해당 부분에 한국의 전문 성우를 투입한 것이다.

이렇게 더빙된 부분은 15분 정도. 2시간 12분인 전체 상영 시간을 감안해도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니다. 영화사측은 한국어 대화가 영화의 사건과 배경 등을 설명하는 결정적인 부분이라, 한국에서만이라도 더빙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영화사측이 이번 작품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또 다른 이유는 전세계를 파멸시키려는 악당 구스타프(토비 스티븐스)의 심복으로 릭윤이 나오는 등 북한이 좋지 않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자칫 반미 의식을 자극할 수 있는 데다 한국어마저 엉망이면 흥행 전선에 먹구름이 낄 수도 있는 것이다. 할리우드측도 이런 점을 의식하는 눈치다. 개봉에 앞서 한국 지사에 공식 입장을 전해왔다. 007 시리즈는 액션·어드벤처·팬터지 영화며 절대 정치적 메시지를 담지 않다는 게 요지다. 또 지금까지 유럽인·미국인·러시아인 등이 악당으로 등장했고, 이번 영화에서도 선한 역의 아시아 배우가 나온다고 덧붙였다. 영화가 선보이는 연말께 한국 관객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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