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통행과 부적절한 美언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국군과 유엔사(미국) 양측이 어제 비무장지대(DMZ)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동해선 임시도로의 통과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합의한 것은 다행스럽다. 이로써 남북 간에 곧 연결될 동·서부 양쪽의 철도와 도로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통행체제가 사실상 마련됐다. 그러나 이 합의에 앞서 남북한·미국 사이에 벌어진 신경전이 재연돼서는 안되며, 남북 간 통행의 활성화를 위해 세 당사자가 적극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미국 측은 최근 군사분계선(MDL)을 넘는 군인과 민간인은 유엔군 사령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정전협정 1조 8항의 엄격한 준수를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금강산 육로관광을 포함한 남북 간 철도·도로의 통행은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된다. 미국이 판문점을 통한 남북 왕래시 지난 30여년 간 우리 측의 사전통보로 허가해온 요식적인 절차의 관행을 이번에 일시적으로 틀었던 것은 북한이 정전협정을 무력화하려는 기도 때문이었다. 미국은 결국 기존 관행의 수용을 양보했다. 문제는 북한이다. 북한도 MDL 통과의 간소한 절차가 정전협정 틀 내에서 적용된다는 형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도 이 사태와 관련, 맹성(猛省)하고 재발방지를 해야할 대목이 있다. 의정부 여중생 두명의 비참한 압사사고의 처리를 둘러싸고 한국 내 반미정서가 고조된 가운데 유엔사 부참모장 제임스 솔리건 소장이 '주권침해적' 발언을 한 점이다. 그는 "정전협정이 준수되지 않으면 남북 교류협력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어처구니 없는 말을 했다. 그의 발언은 북측의 정전협정 무력화에 반발한 측면도 있다. 그렇더라도 이 민감한 시기에 그처럼 직설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주한미군 고위장성이라면 들끓는 한국 내 반미정서를 조금이라도 순화시키는 언행을 하는 것이 자기 국익에도 합치하는 것 아닌가. 미국 측은 여중생 두명의 희생으로 형성된 한국 내 반미정서가 심상치 않음을 직시,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