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투쟁의 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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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여중생 두 명을 사망케 한 장갑차 사고와 관련된 미군 병사들에 대한 미 군사법원의 무죄평결이 온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전국적인 규탄 집회가 이어지자,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희미하게나마 인지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도 사과문을 보내 주한 미 대사에게 대신 읽게 했다. 한국 정부도 부랴부랴 수습에 나서고, 언론에서도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필요성에 대한 원론적 지적과 함께 시민들의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이 사태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정치의 본질에 대해 다시 묻게 된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 상호관계로부터 태어나는 것이 바로 정치일 것이다. 그런데 개인이나 집단 모두에 있어 그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이 바로 남들로부터 동등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는다는 데서부터 온다. 이는 교육학이나 사회학적인 전문 지식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직관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인간의 정체성을 가장 깊숙한 차원에서 떠받치는 요소가 바로 남들로부터의 인정인 것이다. 인정받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 정치적 삶의 많은 부분을 규정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노력이 훼손되고 좌절될 때 우리는 수치심을 느끼며 또한 분노한다. 그리고 그런 분노의 감정 자체가 자존심의 마지막 버팀돌이 되면서 우리로 하여금 주체성을 지닌 존재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수많은 사회적 갈등이나 국제 분쟁의 배경에 근원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인정투쟁의 정치학'이다.

팔레스타인에서 거의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자살폭탄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이제 젊은 여성들까지 자원해서 자살특공대가 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음흉한 정치적 목적을 갖는 테러리스트 집단이 순수한 젊은이들의 생명을 악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폭력을 용인하는 문화가 개입했을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배경은, 자기 땅으로부터 쫓겨나 천대받으면서 살아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절망감이다. 즉 이스라엘 통치지역에서 자신들의 자존심이 여지없이 훼손되는 데 대한 분노의 표출인 것이다.

대상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자살공격은 물론 반인륜적이며, 처참한 팔레스타인 상황을 오히려 더 악화시키는,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다. 이스라엘 상품 불매운동 같은 평화적 운동이 더 효과적인 투쟁수단으로 작동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치 세계에서 인정투쟁이 불가결의 핵심적 요소로 기능한다는 교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사태를 다루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가히 굴욕적이라 할 수 있다. 미군에 대해 항의하는 한국 시민들에게 오히려 한국 경찰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우리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물론 북 핵 문제를 둘러싼 어지러운 정황에서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한반도 평화구조를 뿌리내리려는 정부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어려울수록 당당하게 처신하는 것이 나의 자존심도 지키고 남들로부터 인정받는 길이라는 것도 오래 된 진리다.

미국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라도 우리가 계속 좋은 사이를 유지해야 할 우방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 이후 들불처럼 퍼지는 한국 국민의 분노가 스쳐 지나갈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국은 직시해야 한다.

몇몇 면피용 공치사로 잠재워지기에는 불평등한 한·미 관계가 그동안 한국 시민들의 자존심에 입힌 상처가 너무나 크고 깊기 때문이다.

미국이 진정 성숙한 민주국가라면,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한국 시민들의 열망을 받아들이는 실질적 조치를 빠르게 취해야 한다. 한 세대 만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쟁취하게 만든 한국인의 강렬한 인정 욕구를 미국은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 인정 욕구를 열린 자세로 수용하는 것이 미국 자신의 국익에도 부합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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