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유세 鄭지원 절실 갈 길 급한 盧 '일단 수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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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분권형 대통령제란=대통령이 국방·외교·남북 관계 등 외치(外治)에 전념하고, 국무총리가 내정(內政)을 맡는 것으로 사실상 이원집정제에 가깝다. 대통령은 총리 지명권을 갖지만 국회의 동의 없이 총리를 해임할 수 없게 해 총리의 독자적 권한이 보장된다. 민주당과 통합21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동시 추진하면 2008년부터 총선과 대선을 동시에 치를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이 29일 '분권형 대통령제'개헌에 합의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양당이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고 ▶17대 개원(開院)국회에서 발의,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양측의 개헌 합의는 통합21 정몽준(鄭夢準)대표의 요구를 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가 수용해 이뤄졌다. 盧후보는 당초 개헌에 소극적이었다. 책임총리제를 잘만 실천하면 현행 헌법으로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줄일 수 있다고 그는 믿고 있다. 하지만 鄭대표 측의 끈질긴 개헌 수용 요구 끝에 결국 소신을 접었다. 그만큼 鄭대표의 협력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鄭대표가 적극 지원해주지 않으면 단일화 효과가 반감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민주당 내에 널리 퍼져 있다. 여기에 한나라당이 '국정원 도청의혹'을 앞세우며 노풍(盧風·노무현 지지 바람) 재점화를 막고 있다.

최대 쟁점이던 개헌 문제가 타결됨에 따라 양당간 선거공조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 선거공조단 회의에선 ▶공동으로 선대위를 구성하고 ▶鄭대표가 명예 선대위원장을 맡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공조정신을 발휘하고 鄭대표를 예우하기 위한 것"(민주당 申溪輪후보비서실장), "盧후보와 鄭명예 위원장이 전국을 적극적으로 누비고 다닐 것"(통합21 趙南豊안보위원장)이라고 한껏 분위기를 띄웠다.

盧후보·鄭대표가 금명간 회동, 또 한번 '러브 샷'이벤트를 연출한다는 계획도 짜고 있다.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특히 이번 대선의 최대 승부처로 떠오른 영남과 충청지역에서 盧후보의 지지율 반등을 노릴 수 있다고 기대한다. 鄭대표의 정치적 기반인 울산과 盧후보의 출신지인 부산·경남에서 인기가 오르면 곧바로 전국적 판세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鄭대표 입장에서도 크게 밑지지 않는 장사를 한 셈이다. 盧후보와 '러닝 메이트'로 뛸 경우 흔들리는 통합21을 다잡을 수 있다. 대선 이후나 2004년 총선에도 대비할 수 있고, 이미지를 잘 다듬어나가면 차기 대선을 겨냥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盧·鄭공조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권력 나눠먹기'란 여론이 확산되는 게 부담이다. 한나라당은 "'DJP 연합'에 이은 제2의 권력나눠먹기""盧·鄭 야합 밀약"이라며 공격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통합21 주변에선 "鄭대표가 후보를 놓친 데 대한 깊은 상실감과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커다란 걸림돌 하나가 해결됐지만 鄭대표 측이 또다시 새로운 요구를 내놓을 경우 공조가 흐트러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살얼음판 위를 걷는 심정"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정민·김성탁 기자

jm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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