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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 등 고급차 20여대 수집 벤츠 스포츠카는 獨파병때도 가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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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로큰롤의 제왕으로 사람들의 가슴 속에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엘비스 프레슬리는 생전에 전 세계에서 6억장의 음반을 판매한 공전의 대기록을 세웠다. 1977년 42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죽은 뒤에도 매년 수백만달러의 음반수입을 기록한다고 한다.

56년 '하트 브레이크 호텔'로 데뷔한 이후 잘 생긴 얼굴, 남성미와 부드러움을 갖춘 천부적인 가창력, 특유의 다리춤을 곁들인 폭발적인 무대 매너로 세계의 젊은 여성들을 사로잡았던 그는 자동차와도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었다.

엘비스는 트럭운전사 출신이다. 가수가 되고 싶어 그의 트럭 뒤에 피아노를 싣고 다니며 노래를 부른 것이 음반회사인 RCA 관계자의 눈에 띄어 출세하게 됐다는 일화도 있다.

스타가 된 뒤 찍은 33편의 영화 중 3편의 자동차 영화에 출연해 운전 테크닉을 과시하기도 했다. 라스베이거스 그랑프리에 도전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막 자동차경주에 출전한다는 내용의 '비바 라스베이거스'(64년), 레이스카의 테스트 드라이버 생활을 다룬 '스핀 아웃'(66년),스톡카(시판되고 있는 차) 레이서의 도전을 다룬 '스피드 웨이'(68년) 등이 그것이다.

데뷔와 함께 첫 성공을 거둔 1년 후인 57년 군에 입대해 독일로 파병될 때에는 미국에서 구입한 벤츠 300SL 로드스터를 복무지로 가져가 탔을 만큼 이차에 강하게 집착했다. 60년대 말부터는 롤스로이스·캐딜락 등 고급차를 특별히 주문하는 등 차를 수집하기 시작, 사망하기 직전에는 리무진 등 각종 고급차 20여대와 몇 대의 할리 데이비슨 모터사이클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엘비스가 소유하고 있던 차 중에서도 특히 좋아한 차는 제트기 꼬리 날개식의 화려한 디자인으로 유명했던 59년형 핑크색 캐딜락이다. 그는 부품 하나 하나를 직접 손 볼 정도로 이 차를 아꼈다. 그는 사망하기 수년 전부터 가까운 친구에게 자신의 캐딜락을 선뜻 선물하는 기분파였지만, 이 차만은 끝까지 지켰다고 한다.

엘비스는 죽었지만 그의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 96년 말 런던에서 열린 엘비스 유품 경매전에서 그가 생전에 그토록 아꼈던 핑크색 캐딜락에 부착된 'ELVIS'표기의 번호판이 무려 40만달러에 팔렸다.

엘비스는 이름만 남긴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비싼 자동차 번호판도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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