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화합에 점수 줬겠죠” 재기 의욕 넘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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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화합으로 신뢰를 줬으니 회사를 사겠다는 곳이 나온 거 아닌가요. 우선협상대상자도 선정됐으니 약속대로 투자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3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만난 임직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 꺼낸 두 마디가 ‘노사 화합’과 ‘투자’였다. 지난해 구조조정을 둘러싼 노사 간 극한 대립으로 쌍용차는 벼랑에 몰렸다. 당시 사람들은 “쌍용차는 끝났다”고 했다. 그런 쌍용차를 인수하겠다고 예비 실사에 나선 회사가 여섯 곳이었고, 실제 입찰에 참여한 회사가 세 곳이었다. 인도 마힌드라 그룹이 쌍용차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다음 날인 13일 평택공장을 찾았다.

쌍용자동차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인도 마힌드라 그룹이 선정된 다음날인 13일 오후 쌍용차 평택공장 차체조립공장 2, 3라인에서 직원들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조립하고 있다. 이곳은 지난해 쌍용차 파업 당시 노사가 가장 극렬하게 대치하던 곳 중 하나다. [김태성 기자]

쌍용차 평택공장 차체조립공장 2, 3라인. 이곳에서는 쌍용차의 주력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렉스턴·카이런·액티언·액티언스포츠가 조립되고 있었다. 이곳은 지난해 여름 파업 당시 노조원들이 격렬하게 맞서던 장소다. 당시에는 불에 탄 자동차 부품과 타이어 냄새가 진동했고, 여기저기 그을린 기계를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조립공장 안팎에서 지난해 상처는 찾을 수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25년차 직원은 “그래도 우리가 ‘산 자’니까 웃으면서 일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죽은 자’들을 생각하면 더욱 열심히 일해야죠.” 요즘 쌍용차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산 자’요, 지난해 구조조정으로 떠난 이들은 ‘죽은 자’로 불린다. ‘죽은 자’의 희생과 ‘산 자’의 노력 덕분에 생산성은 향상됐다. 지난해는 7200명이 시간당 22대를 생산했다. 최근에는 4300명이 시간당 18대를 만든다. 생산성이 약 37% 늘어난 셈이다.

쌍용차는 올 1~7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5% 늘어난 4만3881대의 차를 팔았다. 류재완 인사노무 담당 상무는 “생산성이 높아지고 자동차 산업 경기가 좋아졌기 때문에 우리 회사를 사겠다는 곳이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규백 노조 교육선전실장은 “노사가 상생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며 “자기 주장을 접고 상호 신뢰를 통해 양측 모두 살아났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일 르노-닛산이 인수제안서 제출을 포기하고, 마힌드라가 유력한 인수 후보자로 떠오른 직후 노조 대의원들이 모였다고 한다. 이날 대의원 회의에 참석했다는 한 직원은 “이왕이면 르노-닛산이 인수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조합원 사이에 있었다”며 “누가 됐든 투자를 제대로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말하는 투자는 무엇일까. 바로 ‘신차 개발’을 위한 투자다. 쌍용차의 야심작인 소형 SUV 코란도C(C200)도 지난해 1월 중국 상하이차가 떠난 뒤 자금난으로 출시가 미뤄지고 있다. 조립라인에서 만난 한 직원은 뼈있는 한마디를 했다. “2005년 상하이차가 인수했을 때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기술만 빼갔지 신차 개발에 투자하지 않았다. 마힌드라도 이런 분위기를 알고 있어야 한다.”

평택=강병철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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