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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재판 앞서 법원이 상담·치료 주선 등돌린 부부 다시 손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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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남편의 의처증에 시달리던 40대 李모씨는 지난 9월 초 서울가정법원에 이혼소송을 냈다. 李씨는 "의처증 때문에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외출할 수 없고 폭행도 잦아 도저히 함께 살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金씨 부부에게 판결 대신 심리상담사를 만나 치료를 받으라는 '처방'을 내렸다.

金씨 부부는 법원의 소개로 모 정신보건센터를 찾았고 한달여 동안 이 곳에서 주2회씩 심리상담을 받았다. 법원이 치료기간으로 제시한 3개월도 안된 지난달 중순 金씨 부부는 소송을 취하했다. 부인 李씨는 "전문의 상담을 받으며 남편과 대화해 보니 조그만 오해들이 눈덩이처럼 커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가정법원이 올해 초부터 시행 중인 '사회복지기관 컨설팅 시스템'이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이혼을 원하는 부부에게 적절한 기관을 소개해줘 조정단계에서 원만하게 해결해주고 있는 것이다. 가사소송규칙의 조정조치제도를 활용한 것으로, 지난달까지 이 방법을 통해 해결된 이혼 사건이 40여건에 이른다.

◇심리상담 의뢰=李모(30)씨는 남편과 신용카드 사용 문제로 다투다 감정싸움으로 번져 지난달 덜컥 이혼소송을 냈다. 법원은 이들 부부에게 가족치료센터를 소개했다. 두 사람은 전문치료사가 입회한 가운데 20여분간 상대방의 주장을 들어주는 치료를 1주일간 받은 뒤 다시 손을 잡았다.

지난 8월에도 법원은 배우자의 독단적인 집안일 처리에 반발, 이혼소송을 냈던 金모(40·여)씨 부부에게 신경정신과의 '부부클리닉'을 소개했다. 金씨 부부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수차례 결혼생활에서 배우자에게 고마웠던 일과 서운했던 일들을 자세하게 썼다. 그리고 이를 바꿔 읽으면서 두 사람의 마음의 벽은 허물어졌다.

◇가족문제 해결=吳모(39)씨는 3년 전부터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시아버지를 모시다 남편과 불화가 생겼고 결국 시누이가 시아버지를 맡게 됐다. 이를 서운하게 여긴 시누이는 吳씨를 상대로 부양료 청구소송까지 냈고 吳씨는 결국 법원을 찾았다. 이들 부부에게 법원은 시누이와 함께 치매노인센터를 찾으라고 권했다. 법원이 알려준 집 근처 치매노인센터를 남편·시누이와 함께 찾은 吳씨는 치매 문제로 고통을 겪는 여러 부부들의 사례에 대해 들었다. 결국 가족들은 시아버지를 센터에 입소시키고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주말마다 모시기로 결정했다.

◇자활 동아리 소개=알코올 중독자의 부인 李모씨는 남편이 입원 치료를 받으면서도 술을 끊지 못하자 지난 6월 이혼소송을 냈다. 법원은 李씨에게 병원 대신 남편과 함께 '단주(斷酒)모임'에 나가도록 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서로 해결책을 찾아보라는 취지였고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이들 부부는 5개월간 모임에 참가한 끝에 최근 가정을 되찾았다.

최명규 변호사는 "일본의 경우 전체 이혼 사건의 20% 정도를 사회기관에 넘겨 원만한 해결 방법을 찾아주지만 우리는 이제 초보 단계"라며 "당사자들에게 사회기관 컨설팅을 필수적으로 받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진배 기자

allons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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