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졸업장, 아이팟, 차 … 자신 뽐내려는‘공작 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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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스펜트
제프리 밀러 지음
김명주 옮김
동녘사이언스, 655쪽
2만5000원

소비사회다. 돈을 쓰라고 부추기는 소위 ‘지름신’과 더불어 사는 시대다. ‘안 벌고, 안 쓰면 되지’라고 결심도 해보지만, 돈 벌면 사고, 또 다른 물건에 욕심 내는 소비의 유혹은 강렬하다. 왜 그럴까. 우리가 집단에서 살아남고, 짝을 유혹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생물학자들의 대답은 그리 낯설지 않다.

지은이는 이를 훨씬 더 쉽게 설명한다. 사람들 눈에 근사해 보이고 싶어서라고. 친구와 짝, 동료에게 사랑과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기를 쓰고 자신을 선전하고 있는 것, 그게 ‘마케팅’이란다. 내친 김에 그는 소비주의를 물질주의라기보다 기호학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상품의 주된 기능은 물질적 효용성보다 ‘신호’를 보내는 데 있다는 점에서다.

책은 이렇듯 인간의 과시본능을, 나아가 소비 자본주의를 철두철미 진화적 시각에서 분석한다.

선사시대 조상들의 눈으로 보면 우리가 ‘문명’을 개발해 무엇을 포기했고, 무엇을 얻었는지 분명해진다. 우리의 욕망은 광고의 명령에 순응하며 소비를 통해 남들에게 자신을 과시하려 한다. 과시 욕망이 값비싼 물건에 대한 집착을 낳았다. [동녘사이언스 제공]

책에 따르면 학위 증서나 아이팟, 자동차, 집 등은 자신을 드러내고 뽐내려는 공작의 꼬리와 다를 게 없다. 좋은 유전자, 건강, 사회 지능 등 개인의 좋은 형질이나 자질을 우월함의 형태로 보여주는 신호라는 점에서다. 그런데 잠깐, 지은이는 부와 지위 등이 모호한 가짜 형질들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란다. 신체와 정신의 건강, 원만한 성격처럼 안정적인 형질과 거리가 먼 거짓 신호들로 우리가 서로 속고 속이려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소비주의는 ‘거짓말’을 조장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믿는다. 평균 이상의 제품을 구입하면 평균 이하인 개인적 결함이 보충될 수 있다고 믿게 하고, 더 나은 제품이 우리를 더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라고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보톡스를 맞은 마흔일곱 살의 여성이 잠시 나이 흔적을 지우고 데이트에 성공할 수 있지만 지능과 성격, 도덕적 미덕까지 개선할 수 없는 것처럼, ‘제품’만에 기대어서는 누구도 오랫동안 속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지은이는 “신호전달을 둘러싼 우리의 자기 기만은 깊고, 넓고, 두텁다. 이런 자기기만은 우리가 온전하게 깨어있는 소비자가 되는 것을 가로막는다”고 일갈한다. 사람들이 대화·협력·포용 등의 자연스러운 형질보다 인공적인 제품에 더 많이 신경 쓴다고 생각하는” 망상에서 깨어나라는 주문이다. “소비자본주의가 하는 일은 대개 백합에 금칠을 하는 것” “고삐 풀린 자본주의만으로는 나르시시즘·소모·소외 밖에 얻을 게 없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설득력 있다.

그렇다고 소비자본주의를 일방적으로 비판한 책이라는 오해는 하지 말기를. 저자는 우리가 언어, 지능, 고운 마음씨, 창의성, 아름다움 같은 자기과시를 위한 ‘자연스러운’ 방법들에서 얼마나 멀리 와있는가를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보다 윤리적 투자와 자선, 사회자본 등 장기적인 가치를 염두에 둔 ‘형질 과시 시스템’을 보다 창의적이고, 주체적으로 찾아보자는 제안이다. 진화심리학의 깊이와 사회학적인 통찰을 탄탄하게 갖춘 책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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