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오쯔양'이 '산 후진타오' 흔들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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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오쯔양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사망한 17일 중국 무장경찰이 베이징 천안문 광장을 가로질러 행진하고 있다. 자오는 1989년 천안문 사태의 강경 진압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덩샤오핑에게 숙청당했다.[베이징 AP=연합]

자오쯔양(趙紫陽) 전 공산당 총서기가 17일 세상을 뜨면서 중국 대륙의 시계 바늘이 순식간에 16년 전으로 돌아갔다. 1989년 6.4 천안문(天安門) 사태 당시 무력 진압을 반대했던 그에 대해 "재평가하라"는 목소리가 중화권에서 거세지고 있다.

자오의 측근이었던 옌자치(嚴家其) 전 중국사회과학원 정치연구소장은 홍콩 유선TV와의 인터뷰에서 "베이징(北京)의 지도자가 그를 재평가하지 못하면 정치력의 부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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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최고 지도자였던 시절 당 중앙으로부터 "당을 분열시키고 동란(動亂)을 지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덩의 후계자로 국무원 총리(80년)와 당 총서기(87년)에까지 올랐다가 하루아침에 해당분자(害黨分子)로 몰렸던 것이다.

하지만 재평가 요구는 덩과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후계자인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으로선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그를 재평가하면 천안문 사태를 재평가해야 한다. 정치 개혁과 부패 척결 요구까지 수용해야 한다.

그래서 일각에선 "죽은 쯔양(紫陽)이 산 진타오(錦濤)를 흔들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뿔뿔이 흩어졌던 민주화 세력이 자오쯔양과 천안문 사태의 재평가를 화두로 총결집해 체제 도전에 나설 가능성이다.

이런 조짐은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 인터넷상에서 가시화하고 있다. '자오쯔양과 중국 개혁'이라는 민간 단체는 이날 "쯔양(紫陽)을 애통하게 추도한다(痛悼 紫陽)"는 일종의 격문을 내놓았다. 표현도 89년 천안문 사태 직전의 개혁파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를 기렸던 '퉁다오(痛悼)'를 그대로 썼다. 이 단체는 또 자오쯔양의 장례.추도식을 후야오방의 사망 당시와 동등한 수준으로 하도록 요구했다. 후야오방을 애도하는 인파가 몰려들어 천안문 사태의 계기가 됐던 전례를 노리는 것이다.

자오쯔양은 16년간의 가택 연금 기간 중 "정치.경제 체제를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정치 개혁 없이 경제 개혁만 서두르면 무산계급의 독재와 다를 게 없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일대기 작성을 위해 진행했던 구술에선 공산당의 정치 권력을 인민에게 돌려줄 것과 민주.법치 제도의 조속한 실시 등을 촉구했다고 한다. 자오의 정치개혁론은 후 주석 등 현 지도부의 정치 개혁 의지를 도마 위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다.

중국 대륙은 천안문 사태 이후 공산당이 주도하는 '개발 독재'노선을 달려왔다. 그 덕분에 연 8~9%대의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정치.사회 분야에선 각종 갈등과 모순이 폭발 일보 직전이다. 그러나 중국 전문가들은 "자오쯔양의 사망 때문에 대란(大亂)은 없을 것"이라고 낙관하는 분위기다.

정위숴(鄭宇碩) 홍콩 시티대학 교수는 "천안문 사태의 재평가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날 수 있으나 중국의 정치 구조는 16년 전보다 훨씬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홍콩.베이징=이양수.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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