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南 철도 놓는데 왜 美가 간섭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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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비무장지대(DMZ) 내 지뢰 제거 작업이 남북 상호검증단 파견을 둘러싼 주한유엔사령부와 북한군의 갈등으로 10여일 지연됨에 따라 그 전말 및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는 남북 상호검증단 파견을 제의한 것은 남측이다.

국방부는 북측의 지뢰 제거 작업이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자 공사 진척도를 검증하기 위해 지난 10월 초 남북 군사실무접촉에서 상호검증단 파견을 제의했다.

처음엔 머뭇거리던 북측이 네차례 실무접촉을 거치면서 11월 초 남측 제의를 수용키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6일 유엔사 측이 북측에 "남북이 합의한 상호검증단 파견은 정전협정 소관사항"이라며 군사정전위에 명단을 통보할 것을 요구하자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북측이 명단통보를 공개적으로 거부하면서 쟁점화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 장관급 회담 북측 단장인 김영성 내각 책임참자는 17일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은 북남 철도·도로 연결과 관련해 어떤 문제에도 간섭할 명분이나 조건이 없다"고 밝히는 등 잇따라 미측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렇듯 대미(對美) 비난의 포문을 열고 있는 북측의 주장은 지난 9월 17일 남북 간에 체결한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작업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서'를 근거로 삼고 있다.

군사보장 합의서에는 '남북 관리구역에서 제기되는 모든 군사적 문제들은 남과 북이 협의 처리한다'고 명시돼 있는 만큼 군사정전위에 명단을 통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게 북측 주장이다.

또한 북측은 2001년 11월 경의선과 동해선이 지나는 비무장지대의 '관리권(administration)'은 남북한이 갖는 것으로 유엔사와 북한군 간의 장성급 회담에서 합의했으므로 유엔사가 관여하면 안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유엔사 측은 군사보장 합의서에 상호검증단 파견 문제가 합의되지 않은 만큼 정전협정을 준수해야 하고, 군사분계선을 넘는 것은 유엔군 사령관의 '관할권'에 해당하기 때문에 명단을 통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국방부는 유엔사와 북측의 갈등이 장기화하자 일단 북측을 설득하되 끝내 거부하면 검증절차를 생략하기로 협상전략을 세웠다. 국방부 관계자는 "논리적으로 보면 유엔사의 주장이 맞다"면서 "명단통보 절차도 이름과 계급을 적은 문서를 군사정전위에 통보하는 간단한 것이나 북한이 끝내 수용하지 않으면 검증을 없던 일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철희 기자

ch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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