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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태평양 전쟁 때 부산서 세균무기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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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일제가 태평양전쟁 중이던 1944년 부산에서 세균무기 실험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 출판된 『육군 노보리토(登<6238>)연구소의 진실』에서다. 노보리토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세균무기 개발에 참여했던 반 시게오(伴繁雄)가 생전에 동료 연구원들이 남긴 자료를 정리한 책이다. 노보리토 연구소는 옛 일본육군 제9기술연구소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생물화학무기 개발과 위조지폐 제작을 담당한 극비 연구기관이었다.

일본 가와사키(川崎)시 메이지대 이쿠다 캠퍼스 내에 있는 옛 노보리토(登戶) 일본군 연구소. 1939년 설립된 이 연구소는 생물·화학 병기 개발, 위조지폐 인쇄 등을 비밀리에 진행했다. [가와사키= 연합뉴스]

당시 일제는 소에게 치명적인 질병인 우역(牛疫·rinderpest)을 미국에 퍼뜨리기로 하고, 노보리토 연구소가 독을 분리해 동결 건조한 분말 형태의 세균무기를 개발했다. 이 세균무기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부산과 중국 만주 등에서 실험을 벌인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44년 5월 노보리토 연구소 직원과 폭발전문가 등으로 이뤄진 실험단이 낙동강변 삼각주에 소 10마리를 세워놓고 세균무기 실험을 벌였다.

이들은 실험용 소를 향해 폭파장치로 독 분말을 살포했다. 연구원들은 이 소들을 당시 부산시 암남동에 있던 조선총독부 가축위생연구소(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전신)으로 옮겨 관찰했다. 소들은 실험 후 사흘째부터 발열과 설사 등 전형적인 우역 증상을 보였고 일주일 후엔 모두 죽었다.

이 실험을 직접 담당한 구바 노보루(久葉昇) 후지타학원 보건위생대학 전 교수는 ‘구 육군 제9기술연구소(노보리토 연구소) 제6연구반 연구개요’라는 논문에 “실험 결과는 완벽한 성공이었다”고 기록했다. 그는 “놀랍게도 실험장소에서 100m 가량 떨어진 곳에 가둬뒀던 연구용 소 10마리도 우역에 감염돼 죽었다”며 예상 밖의 연구 결과에 연구진이 놀랐다고 했다. 이후 부산에서 우역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연구소는 똑같은 실험을 만주의 관동군 군마(軍馬)방역부대에서도 실시했다. 육군참모본부는 세균을 담은 풍선폭탄을 최대 20t까지 만들어 미국 본토의 소를 공격하는 작전을 검토했으나 미국의 보복을 우려해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일제는 45년 패전 직후 노보리토 연구소의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부터 “가해자의 역사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며 보존운동이 벌어진 끝에 연구소 일부 건물들이 남게 됐다.

올 4월엔 가와사키(川崎)시에 있는 메이지(明治)대 이쿠타(生田)캠퍼스에 평화교육 노보리토연구소 자료관이 세워졌다. 자료관에는 전쟁 중 사용됐던 풍선폭탄 등 9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보존운동을 주도한 와타나베 겐지(渡邊賢二) 자료관 고문은 “당시 일본군은 세균 실험이 일본 본토의 환경이나 주민들에게 미칠 영향은 우려하면서 식민지에서는 실험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셈”이라며 “그런 악행을 반성하기 위해 부끄러운 기록을 공개했다”고 말했다. 노보리토 연구소는 내년 3월께 부산에서 구바 전 교수가 작성한 문서를 근거로 실험장소 확인 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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