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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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박주택 ‘국경’외 36편

1986년 등단한 박주택 시인은 “내게 미덕이 있다면 시 쓰기를 멈추지 않고, 그 긴장감을 계속 견뎌 온 것”이라고 했다. [강정현 기자]

박주택(51) 시인의 첫마디는 “어머님이 편찮으시다”였다. 두 달 전 담도암 판정을 받아 오늘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외아들로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온 그로선 버거운 시간일 것이다. “그 동안 내가 쓴 애가(哀歌)·제혼가는 모두 헛것이었다. 죽음·고통을 노래하긴 했지만, 이제서야 비로소 절감한다.”

그의 고통은 시의 영원성, 불멸의 존재성에 대한 희구에서 비롯됐다. “길은 아주 많아서/ 위험이 어딘지 모르지만요/(중략)/ 갈 때까지 가보시면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어둠의 국경’) 하며 세계와 자신을 탐색해 왔다. 마침내 이른 곳이 “아무도 없는 적막”일 때 “불현듯 이곳을 후회합니다, 여기까지 오고 싶었습니다”(이별가 3) 하고, 모순된 욕망을 자책했다.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누가 죽음을, 삶을, 시를 선택할 수 있겠는가. 시인에게 시는 “고요하고 정숙하게 자기를 만나는 순간”이다. “서로의 고요끼리 울리기를/ 고요끼리 어울려서 이 세상이 이루어”(‘허균’)지는 한, 시인은 쓰고 또 쓴다. 육체 안에, 언어 안에 갇힌 존재로서. “자음과 모음이 섞여 머릿속을 떠돌고”(‘자판기’) “철창에 개들이 갇혀 있고”(‘개 파는 집’) “불이 꺼져 있는 사진관”(‘사진관’) 앞을 서성이면서 “왜 모든 것은 문 하나에 갇히는가?”(‘국경’) 하고 되물을 뿐이다.

지난해 출간한 시집 『시간의 동공』에서 화두로 삼은 ‘눈동자’는 근작에도 여전히 흔적을 남긴다. “저/ 하늘에 박혀 있는 물고기”(‘공중 연못’) 같이 시인과 세계를 응시한다. 그 눈을 피하는 것은 세계를 외면하는 것이기에, 시인은 시의 눈을 빌어 나와 세계의 경계를 지우려 한다. “문 앞 서 있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밖을 내다보네/(중략) 문 밖에서 무엇이 되고 있는 문 안을 생각하네/ 무엇이 되어 굳어가는 문 안을 생각하네”(‘문 안, 문 밖’)

난해하고 관념적이라는 평가가 따라다녔던 전작과 달리 예심위원들은 하나 같이 시인의 변화에 주목했다. “하나의 대상을 집중해서 노래하니까 집중도·가독성이 좋아졌다”(나희덕), “관념적 세계를 노래했던 전작들과 달리 명료해진 감각이 눈에 띈다”(문태준)라고 평했다.

글=강혜란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국경

이웃집은 그래서 가까운데
벽을 맞대고 체온으로 덥혀온 것인데
어릴 적 보고 그제 보니 여고생이란다
눈 둘 곳 없는 엘리베이터만큼 인사 없
는 곳/
701호, 702호, 703호 사이 국경
벽은 자라 공중에 이르고 가끔 들리는
소리만이/
이웃이라는 것을 알리는데
벽은 무엇으로 굳었는가?
왜 모든 것은 문 하나에 갇히는가?

문을 닮은 얼굴들 엘리베이터에 서 있다
열리지 않으려고 안쪽 손잡이를 꽉 붙잡
고는 굳게 서 있다/
서로를 기억하는 것이 큰일이나 되는 듯
더디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쏘아 본다
엘리베이터 배가 열리자마자
국경에 사는 사람들
확 거리로 퍼진다


◆박주택=1959년 충남 서산 출생.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현대시 작품상·이형기 문학상·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시집 『꿈의 이동건축』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사막의 별 아래에서』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시간의 동공』 등.



꿈인가 현실인가, 강렬한 매혹

소설 - 배수아 ‘무종’

배수아씨는 되묻는다. “피카소 그림, 쇤베르그 음악은 용납하면서 왜 문학에는 무언가를 재현하라고 요구하는가.” [박지혜 인턴기자]

배수아(45) 소설의 ‘줄거리’가 이해 안 되는 독자들이여, 좌절금지. 작가 스스로 “논술 예시문도 아닌데, 독해력이 부족하다고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다”고 위로한다. “나는 기존에 존재하는 것을 재현하는 문학은 하고 싶지 않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되게 쓰는 게 내 트릭이라면, 그 트릭을 즐기라고 권하고 싶다.”

그는 자신의 소설이 “재미 없다”고 말하는 ‘쿨’한 작가다. “‘무종’이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평론가들이 안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심지어 ‘무종’이 수록된 소설집 『올빼미의 없음』(창비)에 대해 이런 말도 했다. “내가 흡족하게 생각한 ‘밤이 염세적이다’가 맨 끝에 실린 것을 보고, 독자들이 읽다가 중단할 것 같아서 맨 뒤로 뺐나 보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예심위원들 중에 “읽다가 포기했다”는 고백이 있었으니, 헛짚은 게 아닌 셈이다.

중심 서사가 없고,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게 포개지는 문체들.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의 글은 무엇을 위함인가. 지난해 황순원문학상 후보작이었던 ‘올빼미의 없음’에 힌트가 있다. 문학적 아버지이자 글쓰기를 교감해 온 ‘연인’이었던 ‘너’(독일 작가 외르그)의 죽음을 접하고, ‘나’는 발작적으로 되뇐다. “걸어라, 울어라, 그리고 써라.”

명령체로 제시된 ‘써라’에 순종하는 글쓰기. 작가에게 그것은 꿈과 같이 신비로운 것이다. “꿈은 가장 수동적인 상태에서 나를 덮친다. 어떠한 의식도, 준비도 그것을 좌지우지 할 수 없다. 죽은 사람이 나타나고, 처음 가보는 공간에 데려간다. 그 체험을 언어로 최대한 형상화하는 게, 나의 문학이다.”

올해 후보작 ‘무종’은, 작가 특유의 꿈과 의식이 중첩된 글쓰기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첫 장면에서 화자는 한 모형비행기 수집가와 함께 택시를 타고 ‘무종의 탑’을 찾아가지만, 외국인 택시 기사는 “주소가 내비게이션에도 입력돼 있지 않다”며 길을 찾지 못한다. 이어지는 장면은 화자가 이곳저곳 여행 다니며 셋방을 살던 시절, 집주인 노파는 1960년대 오빠가 자신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일흔 넘어 다시 읽어봤던 추억을 얘기한다. 마지막에 화자는 다시 모형비행기수집가와 만나는데, 이들은 양쪽 강변에서 새처럼 알 듯 모를 듯한 대화를 나눈다. 꿈 속인 듯한 이 장면에서 그의 말은 “그의 꿈의 세계에서 내 꿈의 내부를 향해 울리는 것 같았”다.

“운전기사와 조종사, 여자와 남자 사이의 소통불가능을 통해 타자의식에 천착한다”(백지연), “글쓰기와 삶에 대한 질문과 은유가 일관되다”(정홍수)라는 평가다. 얼마 전 작가는 몽골 알타이 사막에서 3주간 체류하고 돌아왔다. 유목민의 삶에 흠뻑 빠졌단다. “이러한 삶이 하늘 아래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유지돼야 할 고유함이 있다는 걸 강렬하게 느꼈다”고 했다. 배수아 문학에 대한 문단의 평 또한 그렇다.

강혜란 기자

◆배수아=1965년 서울 출생. 1993년 『소설과사상』에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으로 등단. 한국일보 문학상·동서문학상 수상.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훌』 장편소설 『랩소디 인 블루』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에세이스트의 책상』 『북쪽 거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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