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경기회복 지연” 충격파, 남유럽 위기 때보다 작을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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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곧 코스피지수 1800을 넘어설 것 같던 한국 주식 시장에 안개가 자욱하다. 미국에서 밀려든 안개다. 11일엔 전날(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경기 회복세가 몇 달 지연되고 있다”고 발표해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산업지수와 코스피지수를 함께 끌어내렸다. 이어 12일엔 6월 미국의 무역적자가 큰 폭으로 늘었다는 소식에 다우·코스피지수가 동반 하락했다. 코스피지수는 11일 1.3%, 12일엔 2.1% 하락했다.

미 6월 무역적자 폭 커졌지만 소비재 수입, 월간 최대 기록

과연 미국은 앞으로 얼마나 더 한국 증시에 부담을 줄 것인가. 전문가들은 “남유럽 재정위기만큼 한국 증시를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럽 재정위기는 자칫 금융불안을 일으켜 실물경제까지 얼어붙게 하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복사판이 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이에 비해 이번 미국의 경기회복 지연은 순전히 실물경제에 대한 것이어서 여파가 유럽 재정위기만큼 크진 않다는 시각이다.

미국의 무역적자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이 있다. 미국은 6월 수출이 전달보다 1.3% 줄어들면서 무역적자 폭이 커졌다. 다만 소비재 수입은 월간 기준 사상 최대인 431억 달러를 기록했다. Fed가 고용 부진을 이유로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있다”고 했지만, 소비는 증가세를 보인 것이다. 삼성증권 임수균 연구원은 “블룸버그는 자체 조사 결과 7월 미국 소매판매액이 전달보다 0.4%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며 “13일(현지시간) 발표되는 미 정부의 7월 소매판매액 지표가 증시에 호재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투자한 IT주엔 악영향 엔화 초강세로 자동차엔 ‘순풍’

미국의 경기 흐름과는 달리 한국은행은 국내 경기에 대해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12일 “수출이 잘되고 내수도 살아나고 있어 우리 경제 전망을 수정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한국경제는 잘 버티고 있다는 뜻이다. 동양종금증권 이재만 연구원은 “상반기에 남유럽 재정위기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출렁거리면서도 점진적인 상승세를 이어갔던 장세가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IT는 흐림, 내수주는 맑음=한국 경제와 주식시장이 미국에서 불어닥친 안개를 헤쳐나갈 수 있다고 하지만 악영향을 받는 업종도 있다. 정보기술(IT)·자동차 업종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IT와 자동차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의존도가 큰 분야다. 대우증권 김학균 투자전략팀장은 “IT업체들은 최근 대규모 설비투자까지 했다”며 “이에 따른 공급 증가에 선진국의 소비 위축이 겹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자동차는 IT보다는 전망이 밝았다. 현대차가 잇따라 신차를 발표할 예정이고, 자동차 시장에서 경쟁하는 일본의 엔화가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이유였다. 김학균 팀장은 “철강·화학 등 아시아 수출이 많은 ‘아시아 내수업종’은 호조를 띨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과 달리 아시아 각국은 견조한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 근거한 관측이다.

철강·화학·보험·전기가스 … 내수·경기방어주 관심 커질 듯

교보증권도 이날 “내수·경기 방어 업종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질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2000년 이후 다우지수가 하락했던 달의 국내 업종별 지수 흐름을 분석한 결과 보험·제약·전기가스 업종이 선방했다는 것이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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