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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어둠의 산객들’ 열대야가 대수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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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산행처를 고를 때 이런 조건에 충족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이런 조건에 맞는 산을 골라 달라고 코오롱 등산학교 박승기(55) 강사에게 부탁했다.

그는 20년 넘게 산행법과 독도법을 강의하고 있는 산행 전문가. 그가 추천해준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운길산’이었다.

지난 4일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데도 박 강사와 함께 운길산에 올랐다. 

막바지 황혼마저 사그라지고 땅거미가 내릴 무렵 야간산행은 시작된다. 지난 4일 취재팀은 박승기(사진 맨 뒤)강사와 함께 수종사를 출발, 운길산 정상을 향했다.

글=김영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지하철로 가는 운길산 야간산행

서울 용산역에서 중앙선을 타면 1시간이 채 안 돼 운길산역에 도착한다. 해발 610m의 그다지 높지 않은 흙산이다. 예전엔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었지만 지하철이 개통된 뒤론 산행객이 부쩍 늘었다. 등산로 입구엔 장어구이집이 성황이다. 길마다 장어 굽는 연기와 향이 진동한다. 우리 일행은 곧장 산으로 향했다. 산행 전 포식은 아무래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운길산역에서 1시간쯤 걸어서 해발 400m쯤 되는 곳에 가면 수종사라는 절이 있다. 절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30분. 여름의 낮이 긴 터라 아직도 훤하다. 야간산행의 묘미는 깜깜할 때 산에 오르는 것. 운길산이 좋은 것은 바로 해가 떨어질 때까지 이 수종사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등산객이 수종사를 거쳐 정상에 오르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행을 꾸려 떠나기에도 좋다. 야간산행은 일행이 많을수록 안전하기 때문에 뭉쳐 다니는 게 좋다.

수종사(水踵붇)는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오던 세조대왕이 이곳에서 샘을 찾고, 종을 발견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선 북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수려하고, 5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 유명하다. 근래에는 다실을 찾는 이가 많다. 한강을 향해 통유리창으로 열려 있는 다실은 누구나 전통차를 내려 마실 수 있는 공간이다. 아쉽게도 다실 이용시간은 오전 11시30분에서 오후 4시30분까지. 야간산행객은 그저 다실 옆 마당에 서서 북한강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하늘이 먹빛이더니 이내 소나기가 퍼부었다. 절간 처마 밑에 우두커니 서서 소나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비가 그치자 동쪽 하늘에 갑자기 붉은 물감이 드리워지더니 막바지 황혼이 불꽃을 태웠다.

수종사에서 운길산 오르는 등산로는 대웅전 못 미쳐 200m 지점에서 시작된다. ‘운길산 0.8km’라는 이정표가 있다. 이날은 날씨 탓인지 기다려도 등산객이 오지 않았다. 결국 우리 일행만 각자 헤드랜턴을 켜고 등산스틱을 꺼냈다. 밤에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스틱은 필수다. “헤드랜턴을 몸 가까이 비추고 발부리를 조심해야 한다.” 박승기 강사가 옆에서 조언을 했다. 또 “몸과 다리가 함께 가는 것보다는 다리를 먼저 내미는 게 좋다”고 했다. 배낭 뒤에 라이트스틱도 달았다. 밤낚시에 쓰이는 케미컬라이트처럼 형광색을 띠는 라이스틱은 야간산행에서 긴요한 물건이다. 앞사람의 헤드랜턴 불빛은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의 시야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때 배낭 뒤쪽에 꽂은 라이트스틱이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상에서 여름밤 만끽

소나기 내린 뒤라 등산로엔 밤안개가 짙게 깔렸다. 이슬비로 착각할 정도로 습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사실 여름밤에 벌이는 산행의 매력은 청량제 같은 시원한 맛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 오는 날의 운길산은 덥고 습했다. 올라가는 내내 땀이 비 오듯 했다. 배낭 속에 미리 챙겨둔 짧은 바지를 꺼내 갈아입었다.

1시간 남짓 걸으니 운길산 능선,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10분이면 오를 수 있다. 능선에 올라서니 이제야 시원한 바람이 통했다. 운길산(雲吉山)은 ‘바람도 쉬어 넘어간다’는 뜻이다. 운길산에서 시작된 능선은 서쪽 적갑산(561m)과 예봉산(683m)으로 이어진다. 높지 않은 산들이지만, 능선이 겹겹이 둘러쳐져 있어 바람도 쉬어갈 만한 산세다. 헬리콥터 포트를 지나니 운길산 정상. 밤안개는 여전이 짙게 깔렸지만 북서쪽 전망은 트여 있다. 운길산에서 2시간이면 닿는다는 적갑산은 안개에 가려 마치 하루거리처럼 멀게 느껴졌다. 그러나 동쪽에 자리잡은 북한강과 남한강 물줄기는 안개에 가려 가늠하기 어려웠다.

정상 도착 시간은 오후 9시. 마지막 전동차가 11시40분쯤이니, 아직도 한 시간은 여유가 있는 셈이다. 서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웃옷을 벗고 밤바람을 만끽했다. 웬일인지 날벌레도 없었다. 진땀을 흘려 산에 오른 다음 정상에서 맞는 밤바람이야말로 야간 산행의 매력이다. 헤드랜턴 불빛을 끄고, 한참 동안 어둠을 즐겼다.

비온 뒤 하산길은 쉽지 않았다. 하산길에 밤안개는 더 짙어졌다. 발광다이오드(LED) 전구가 밝히는 헤드랜턴의 불빛은 짙은 물안개에 반사돼 오히려 시야를 흐렸다. 마치 화이트아웃(백야현상) 현상처럼 길이 뿌옇게 변했다. 이런 길에서는 백열 전구를 낀 손전등이 더 밝아 보인다. 흐린 날엔 백열전구 전등을 준비하는 게 좋다는 걸 알았다.



야간산행하기 좋은 수도권의 산

‘착한 길’ 북악스카이웨이, 보송보송 흙길 남한산성 …

산능선에서 바라 본 도심의 불빛. 야간 산행의 매력이다. [중앙포토]

야간산행은 일몰 후 입산이 통제되는 국립공원을 제외하고 어느 산이나 가능하다. 그러나 밤길은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초보자들도 쉽게 야간산행에 도전할 수 있는 산을 박승기 강사가 골라주었다. 낮고 험하지 않은 데다 올라가는 길은 짧고 하산하는 길은 긴 산들이다.

북악스카이웨이(서울 종로구 부암동)

초심자들이 첫 야간산행에 도전하기 좋은 곳이다. 산이 아닌 트레일을 따라 걷는 길이니, 야간산책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종로구 부암동 자하문에서 시작해 삼청각이나 성북동 방면으로 하산한다. 산행시간 약 2시간.

청계산(경기도 과천시 막계동)

역시 야간산행에 익숙지 않은 초심자들이 도전해 볼 만하다. 서울 도심에서 접근이 용이해 여름이면 야간산행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서울 방면의 경우, 양재동 원터골에서 시작해 원점으로 회귀하는 코스가 적당하다. 산행 시간 약 3시간.

검단산(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수도권의 대표적인 주말 산행지. 먼저 낮에 한 번 이상 올라본 다음 야간산행에 도전하는 게 순서다. 산은 야간산행하기 좋지만 밤에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많지 않은 게 단점이다. 창우동에서 시작해 원정 회귀하는 코스가 적당하다. 산행 시간 약 4시간.

남한산성(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수도권의 대표적인 흙산이다. 특히 남한산성 종주는 주말 산행 코스로 인기다. 갑작스러운 비를 만나도 크게 위험하지 않다. 하지만 종주 코스는 산행 경험이 많은 이들이 도전해 볼 만하다. 남한산성 종주는 낮에도 6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야간산행의 경우 밤새워 걸어야 하므로 비상식량과 물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산행 시간 6시간 이상.



야간산행 주의점

■운동화는 금물 야간산행 장비는 주간산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틱·장갑·헤드랜턴 등을 챙긴다. 운동화는 절대 금물이다. 밤 등산로는 낮보다 훨씬 더 미끄럽기 때문이다. 등산용품점에서 라이트스틱 등을 준비하면 좋다. 낚시용품점에서 파는 케미컬라이트로 대신해도 좋다.

야간산행 보폭 몸 중심을 살짝 뒤로 두는 게 좋다. 밤엔 돌이나 나무에 걸려 넘어질 경우가 많다. 이때 몸보다 발이 먼저 나가게 되면 대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스틱 사용은 필수다.

비상식량 산에서는 조금씩 자주 먹어야 한다. 김밥 등의 탄수화물을 준비하고, 당분이 높은 초콜릿 등도 준비한다.

수분 섭취 야간산행에서는 물을 더 자주 먹어줘야 한다. 어둠 속에서는 심장 박동이 더 빨라지고, 그만큼 수분 섭취량이 늘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음료용 소금을 구입하는 것도 좋다.

물 마시는 방법 벌컥벌컥 마시면 안 된다. 물을 입 안에 넣고 한 모금씩 천천히 넘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쉴 새 없이 찾아오는 갈증을 이길 수가 없다.

  도움말=박승기(코오롱등산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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