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위장전입 대법관 눈 감고 법치 논할 자격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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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인복 대법관 후보자가 위장전입을 시인했다. 어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다.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살면서 2006년에 주소만 경기도 용인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목적이야 누구나 안다. ‘내가 하면 투자, 남이 하면 투기’라는 부동산 놀음이다. 이 후보자는 해당 지역에 1년 이상 거주해야 분양 1순위가 되는 점을 이용했다. 그리하여 2007년 분양가 10억원대의 아파트를 손에 넣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레퍼토리가 아닌가. 인사청문회만 열리면 튀어나오는 문제다. 대한민국 공직자에게는 왜 이다지도 위장전입이 많은가.

위장전입은 거주지를 옮기지 않고 주소만 바꾸는 행위다. 주민등록법상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범죄’다. 그런데도 이 죄목으로 처벌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위장전입이 서민은 언감생심(焉敢生心), 힘 좀 있고 돈 깨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인가. 법쯤은 우습게 아는 권력층의 전유물이 됐나 말이다.

국민의 정부에서 장상·장대환 총리 후보가 위장전입 문제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들 역시 부동산 투기와 자녀 학군 때문이었다. 참여정부에서도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이 위장전입을 통한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중도하차했다. 하지만 이 정부 들어서는 전혀 흠결(欠缺)이 아니다. 그냥 시인하고 유감을 표명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현인택 통일장관, 이만의 환경장관, 김준규 검찰총장, 정운찬 총리, 임태희 비서실장, 이귀남 법무장관 등이 이런저런 사유로 위장전입 의혹을 받았다. 하기야 대통령부터 그랬으니 ‘위장전입 정부’라는 말이 전혀 터무니없지 않다.

그런데 이제는 법(法)의 보루인 대법관이다. 민일영 대법관에 이어 이 후보자까지 위장전입 논란이다.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에 이어 ‘미스터 법률’마저 범법자인 셈이다. 그런데도 당당하게 청문회장에 섰다. 통과의례가 지나고 나면 법의 이름으로 판결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법치(法治)를 논할 자격이 있나. 그러려면 도대체 법은 뭐 하러 있나. 이런 자괴감이라도 없애려면 차라리 주민등록법에서 위장전입 조항을 없애는 게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