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과 결혼 안 해!' 했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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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친딸도 이런 엄친딸이 없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컨설턴트에 SBS 예능 PD. 그리고 하버드대 로스쿨과 케네디 스쿨을 동시 졸업하더니 이젠 벤처기업 이사로 돌아왔다. 소셜 커머스 기업 '쿠팡'의 윤선주(33) 이사의 얘기다. 그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딸이다.

윤 이사는 "죽을 때 '아, 나는 정말 내가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봤어'하면서 웃으며 죽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못 하고 죽으면 너무 한스러울 것 같다"며 "그래서 후배들이 조언을 구해오면 항상 '직접 부딪혀보라'고 말해준다"고 했다. "옆에서 아무리 말해줘도 본인이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겠더라고요. 제 경험이 정말 그랬어요."

윤 이사도 처음부터 PD나 컨설턴트를 꿈꾼 건 아니었다. 서울대 재학 시절, 방문학생 자격으로 하버드대서 1년을 보낸 게 계기가 됐다. 미국의 컨설팅 붐을 보면서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글로벌 기업의 서울지사를 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하던 중, 기업을 위해 일하는 컨설턴트도 좋았지만 사람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 PD가 됐다. '야심만만'이 그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얼마 전 방송인 김제동씨의 하버드 로스쿨 특강도 윤 이사가 다리를 놓았다.

쿠팡(www.coupang.com)은 맛집 식사권이나 공연 티켓 같은 다양한 체험 서비스 상품을 소셜 네트워트 서비스(SNS)를 통해 공동구매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중개업체다. 유학시절 이용했던 미국의 공동구매 사이트 '그루폰(Grouopn)'을 벤치마킹했다. 작은 벤처라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을 만들자는 생각에 정기적인 소년소녀가장돕기 행사도 계획중이다. 여기엔 PD시절 쌓은 연예인 인맥도 동원할 계획이다. "몸담은 직장들이 비슷한 업종은 아니었는데 그때 경험들이 어떻게든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더라고요." 컨설턴트 시절 익힌 경영감각과, 로스쿨에서 배운 지식도 창업에 큰 도움이 됐다.

"공무원인 아버지는 항상 바쁘셨어요. 그래서 '나중에 절대 공무원이랑은 결혼 안 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계속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 보니까 그런 건 아버지를 또 많이 닮았나봐요."

윤증현 장관이 G20 때문에 캐나다에 출장을 간 사이 딸은 귀국해서 사업을 '벌였다'. "집에 오셨는데 제가 방에서 자고 있으니까 깜짝 놀라시더라고요(웃음).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아무 말씀도 안 하세요. '알아서 잘 하겠지' 하시나봐요."

그래서 윤 이사는 "저는 운이 좋게도 도전을 계속할 여건이 됐던 것뿐"이라고 말한다. "제가 가정형편이 어려웠거나, 부양할 가족이 있었다면 이렇게 못했을 거에요. 하지만 여건도 되고 꿈도 있는 여자 후배가 있다면, 뭐든지 꼭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래야 나중에 결혼을 하더라도 후회없이 가정에 충실할 수 있지 않겠어요?" 여기가 결코 끝이 아니라고 말하는 윤 이사는 "뭐가 됐든 공적인 영역(public sector)에서 일을 하는 게 최종적인 꿈"이라고 다부지게 말했다.

선승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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