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휴대폰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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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유리창이 흔들릴 만큼 요란한 휴대전화 소리에 깜짝 놀랐던 적은 없는지.

아니면 빨강·노랑·파랑 불빛이 번득이는 휴대전화를 본 적은? 이도 아니면 무당벌레나 자동차를 닮은 휴대전화는? 안테나가 거꾸로 달린 휴대전화도 인기라던데….

요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이렇듯 희한한 모양과 기능의 휴대전화를 들고 다닌다.

제조업체가 내놓은 휴대전화가 아니다. 드라이버로 직접 분해하고 위험한 납땜질도 마다하지 않으며 만들어낸 '나만의 휴대전화'들이다.

이른바 '휴대전화 튜닝(Tuning)'이라 불리는 개조 열풍은 올 초 호기심 많은 몇몇 젊은이가 연예인 사진을 액정 화면에 합성하면서 시작됐다. 이 '신(新)문물'은 인터넷을 통해 널리 퍼졌고 곧 젊은 세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휴대전화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이후 변기통 모양·마징가제트형 등 케이스에 변형을 가한 것부터 전화기 크기만한 외장형 스피커를 연결한 '초강력 울림 휴대전화', 숫자판마다 각각 다른 불빛이 나오는 '발광 키패드 휴대전화', 버스카드의 칩을 장착한 '버스카드 휴대전화', 안테나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가는 휴대전화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모양과 기능이 날마다 등장하고 있다.

현재 휴대전화 튜닝 인터넷 동호회는 10여개, 회원만 20여만명을 헤아린다. 휴대전화 튜닝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최근엔 제조업체 직원들이 직접 동호회 모임에 참가해 신모델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지난달엔 아마추어 휴대전화 튜닝의 대표 모델이었던 '빛을 내는 큐빅 휴대전화'를 기성 제조업체가 생산·판매하기 시작했다.

회원 10만명의 인터넷 동호회 '나만의 핸드폰 만들기'(cafe.daum.net.onlyonephone)의 운영자 장희범(24)씨는 "현재 시장에 나온 1백여개 모델 대부분은 개조가 가능하다"며 "남보다 튀기 좋아하는 요즘 세대들이 분신처럼 사용하는 휴대전화에 개성을 불어넣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직접 개조해 보니 결코 쉽지 않았다. 드라이버·손드릴 등 공구를 쓰는 것도 영 서툴고 큐빅이나 발광물질(LED)을 박을 때는 인두로 납땜질까지 해야 한다.

하지만 나만의 휴대전화를 갖고 싶어하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이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LED·광섬유 등을 찾으려고 서울 세운상가·용산전자상가 등을 뒤지고 보석 도매상을 돌며 큐빅을 산다. 여성 매니어들은 매니큐어 한 통을 휴대전화에 칠하고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고교 3년인 한주희(18)양은 "휴대전화 튜닝족들은 보통 대여섯번씩 본체를 망가뜨려 봤다"며 "남자들은 대형 스피커를 붙이거나 통째로 뜯어내는 걸 좋아하고 여자들은 액정화면에 스티커를 삽입하거나 매니큐어 등으로 외장에 색칠을 하는 쉬운 방법을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개조에 청소년들이 매달리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공작용 인두기가 몇천원에서 몇십만원까지의 편차를 보일 뿐 큐빅(8천원)·LED(1천원) 등의 재료들은 그리 비싸지 않다. 기타를 칠 때 쓰는 피크나 매니큐어 등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할 수도 있다.

지난 1일 서울 대학로에 휴대전화 개조 전문점을 연 방정준(25)씨는 "인터넷 동호회에서 만난 세명이 함께 일을 하는데 일손이 모자라 손님을 더 못 받는다"며 "지난 13일엔 환갑이 다 된 아저씨가 숫자판에 발광물질을 넣고 갔다"고 말했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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