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어둠 속 뭐가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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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우주의 신비 중 하나인 암흑물질이 세계 최초로 우리 과학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과학기술부가 지원하는 '암흑물질 탐색 연구단'이 올해 말부터 본격적인 암흑물질 찾기에 들어간다. 여기에는 서울대·세종대 등 국내 5개 대학과 미국 메릴랜드대·중국 고등물리연구소 등 외국의 6개 대학·연구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실험 장소는 현재 건설 중인 강원도 양양 양수발전소의 지하 공사용 터널로 땅속 7백m 지점이다. 연구단은 1999년부터 땅속 3백m에 위치한 청평 양수발전소 지하 시설에서 준비 실험과 각종 측정 등을 해 왔다. 앞으로는 양양과 청평 두 곳에서 동시에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대의 우주론에 따르면, 암흑물질은 질량으로 볼 때 우주의 90∼95%를 차지한다고 생각된다. 나머지가 빛을 내는 별과 성운 등이다. 암흑물질은 그보다 10배쯤 많은 셈이다. 이렇게 많은데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첫째 이유가 빛을 내지 않아서다.

또 다른 물질과 반응을 하면 그 결과를 보고 암흑물질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인데, 불행히도 암흑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인 윔프(WIMP)는 다른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중성미자도 워낙 반응성이 낮아 이를 찾아내기 위해 검출 용액 6백여t이 들어가는 거대한 탱크가 필요했는데, 윔프는 중성미자보다도 더 반응을 안한다. 그래서 윔프가 손톱만한 면적에 1초당 수십만개씩 우주로부터 쏟아지는데도 아직까지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윔프가 발견하기 어려워 못 찾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어서 못 보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소수의 과학자들도 있다. 정말 윔프가 없다면 현재의 우주론은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할 판국이다. 윔프를 찾아내는 것에 과학자들이 매달리고 있고, 또 이것이 노벨상감이라고들 하는 이유다.

연구단은 윔프를 찾아내기 위해 특수 크리스털을 만들었다. 수많은 윔프가 크리스털에 쏟아지면, 어쩌다 하나가 크리스털의 원자핵과 반응을 일으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약한 빛을 낸다. 그런데 크리스털에는 빛을 증폭하는 장치가 달려 있어, 윔프가 들어와 반응을 하면 즉각 알게끔 돼 있다.

<그래픽 참조>

설명은 쉽지만 이 반응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이론에 따르면 윔프 2천억개가 쏟아져야 한번쯤 이런 반응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또 다른 복병도 있다. 윔프뿐 아니라 우주에서 날아오는 다른 입자나, 지구 내부에서 자연적으로 나오는 방사능 입자들도 비슷한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 때문에 다른 입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 지하 7백m까지 들어가 실험을 하는 이유다. 다른 우주 입자는 땅속을 뚫고 들어가는 가운데 충돌 등 여러 가지 반응을 일으켜 결국 깊은 곳까지 도달하지 못하지만, 반응을 거의 안 하는 윔프는 이렇게 깊은 곳에도 어렵잖게 이른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생각이다.

땅속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막기 위해 크리스털은 초대형 특수 금고 속에 들어간다. 금고는 높이 2.7m, 폭 3m 정도의 크기에 무게 40t이다. 제일 바깥 쪽은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로 안에는 방사능 물질 흡수 용액이 들어 있다. 내부에는 두께 15㎝의 납벽돌을 쌓고, 이것으로도 안심이 안돼 더 안쪽은 두께 10㎝의 구리벽돌로 '도배'를 한다.이 안에 크리스털이 자리를 잡는다. 그 뒤에도 정말 윔프로부터 나온 신호인지를 확인하려면 6개월∼1년쯤 걸릴 것으로 연구단은 보고 있다.

암흑물질을 찾아내는 위업을 우리 과학자가 세계 최초로 이룰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국·영국 등이 많은 연구비를 투입하며 발견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 연구비도 비교가 안된다. 인건비·재료비·시설비 등 우리의 모든 연구비를 합쳐도, 영국이 지하 1천m에 실험시설을 짓는 데 들인 돈의 절반 정도다. 연구단을 이끄는 서울대 김선기(물리학과) 교수는 "양양에 크리스털 25개를 설치해야 빠른 시간 안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연구비가 부족해 6개밖에 못하게 됐다"면서 "우주의 신비를 세계 최초로 풀기 위해 연구비 추가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권혁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woo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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