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털 1g서 양복실 170m 뽑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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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양털 1g에서 실 1백70m를 뽑아 만드는 양복 옷감이 세계 최초로 국내 업체에 의해 개발됐다.

제일모직은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1백70수(手) 양복지 '란스미어 220'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11일 밝혔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1백70수 원단은 양복지 역사가 2백년을 넘는 이탈리아·영국에서도 아직 개발하지 못한 것"이라며 "조금만 긁혀도 옷이 해지기 때문에 주로 가죽의자를 사용하는 부유층에 맞는 옷감"이라고 말했다.

값도 워낙 비싸기 때문에 일반인용으로는 부적절하며, 중동·유럽 왕족이나 재벌 등의 맞춤 정장에 맞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 원단으로 양복을 맞출 경우 옷감 1천5백만원, 특수가공비 5백만원 등 모두 2천만원 정도 들 것으로 추산되며 일반 양복에 비해 30% 정도 가볍고 착용감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 옷감의 원료인 양의 어깨부위 털은 일반 양털보다 2백배 정도 비쌀 뿐 아니라 굵기도 머리카락의 7분의1 정도로 가늘다.

복지 생산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수'는 반도체에 비유하면 메모리 용량과 같은 의미로 통한다.

이 제품을 개발한 상품기획실 윤영수 상무는 "1백70수 양복지를 만들 수 있는 양털은 전세계에 걸쳐 한해에 2백㎏에 불과하다"며 "이는 양복을 50벌 생산할 수 있는 분량"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원단을 짜는 공정은 실 한쪽 끝에 2g 정도의 무게를 매달면 바로 끊어질 정도여서 어렵다"며 "반도체 공정처럼 항온·항습 효과가 있는 클린룸에서 생산한다"고 덧붙였다.

제일모직은 원단 생산에 10여 가지의 특수기술을 적용했다. 일반 방직기에서 실을 뽑아내는 속도를 10분의1로 줄이면서도 끊어지지 않게 했다. 또 염색도 일반 공정으로 하면 실을 태울 수 있어 낮은 온도에서 염색하는 특수기법을 사용했다.

제일모직은 이번 1백70수 개발로 세계적인 복지업체인 이탈리아 로로피아나·영국 목슨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해 유럽·미국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란스미어 220의 브랜드 이미지를 고급화하기 위해 유럽의 귀족을 상대로 명품 마케팅을 펼칠 계획도 세우고 있다.

김태진 기자

tj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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